사회적역할을 찾아가는 한 여자의 쫄깃한 이야기(1)

컴테라피스트 한혜연

이 글은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길을 찾아낸 컴테라피스트(Comm-therapist) 한혜연 님의 자전적 에세입니다. 오랫동안 배워온 Academic career를 뒤로하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회적 역할(캐릭터)을 디자인한 스토리가 감칠맛나게 전개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설계하지 못했거나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은 분들에게 정향(定向)설계에 도움이 되리라 믿어 여기 공개합니다. 한혜연님과 직접 상담을 원하시면 이메일(heyeon.han@gmail.com)로 연락 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컴테라피스트는 대화를 통해 감정을 치유하는 전문가로 국내 1호입니다. -이방인

‘핀 스트라이프 데이브’

데이빗이란 이름을 가진 손님이 15명이라면 어떻게 구별해야할까? 일단 핀스트라이프 옷을 자주 입는 데이빗을 ‘핀스트라이프 데이브(데이브는 데이빗의 애칭)’이라고 별명 붙이기 시작했다. 크게 사업을 하다 망한 데이빗은 ‘브로크 데이브’, 뉴욕 첼시의 유명한 고급아파트인 테이트에 살고 있던 또 다른 데이빗은 ‘데이브 인 테이트’ 라고 불렀다. 내가 그렇게 부르자 다른 스태프들도 그렇게 구별하기 시작했다.

그 밖에도 턱수염이 풍성하게 있던 ‘비어드 데이브’, 의사가운 같은 옷을 늘 입고 왔던 ‘데이브 더 닥터’, 늘 마티니를 2잔 한꺼번에 시키는 ‘더블마티니 데이브’등이 있었다. 데이빗이란 이름이 매우 흔한 이름이긴 했지만 첼시의 작은 레스토랑에 15명의 단골 데이빗이 있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레스토랑의 문은 굉장히 무겁고 큰 나무 문이었는데, 그 문을 열고 들어오면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어둡고 멋진 바가 왼쪽에 시작된다. 수많은 데이빗과 나의 미국 친구들은 무겁고 멋진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와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멋진 바로 왔다. 나는 그곳의 인기 많은 바텐더였다.

전에 한번이라도 와 본 손님이 들어오면 나는 입구에서부터 그를 친근하게 대했다. 친근하게 대하는 건 별게 아니다. ‘너는 나에게 인상적인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비언어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 메시지가 전달되면, 레스토랑 안 쪽 테이블로 들어가려던 사람들이 내 앞 바에 앉아 식사를 주문하게 된다. 내 바의 10개 의자는 늘 그렇게 사람들로 북적였다. 일단 앉으면 그들이 전에 입었던 의상이나, 나누었던 이야기, 전에 주문했던 메뉴들을 세심히 기억하고 물어봐 주었다.

“타일러, 그때 강아지 아프던 건 어떻게 됐어?” “애나, 넌 노란색이 참 잘 어울린다. 지난겨울에도 노란 코트 입지 않았니?” “데이빗! 얼굴이 좋아 보이네. 그때 소개팅에서 만났던 간호사랑 잘 되가는 거야?” 손님은 그런 나를 흥미롭게 바라봤다. 그리고 나와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은 내가 어떻게 그렇게 작은 디테일들을 기억할 수 있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10년 전 뉴욕 바텐더의 삶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온종일 크고 작은 결정을 직관적으로 내리고, 감각적인 언어로 마음을 드러내며, 나만의 매력을 한껏 뽐내며 산다. 그래서 때때로 나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고, 나의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살리기도 한다.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오면 현실 속 나와 마주하게 된다. 스스로 세웠던 목표는 종종 요원하게만 느껴지고, 풀리지 않은 불편한 마음속 문제들로 후회되는 말을 하기도 한다.

또한 나의 가치가 돈으로 증명되지 않을 때 무척 심드렁해 지는 걸 보면, 돈 문제로 부터도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나를 지지해준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의 빚이 늘어간다.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가 정작 고삐를 단단히 잡아야 할 때면 넉다운 되기도 한다.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모른 채 어딘가 부족한 것 같은 기분에서 해방되질 못한다. 그러다 한번 씩 ‘이 일이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었나?’하는 회의감이 들면 힘이 쫙 빠진다. 나의 경우 프리워커로써의 삶은 행복감, 만족감이 높은 삶이 아니다. 오히려 모기떼같이 몰려오는 근원적인 아픈 질문과 매일 맞닥뜨리는 삶이다.

‘이것이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인가?’
‘나는 가치로운 삶을 살고 있나?’

‘나는 제대로 보상을 받고 있나?’
‘후회하는 건 아닌가?’

‘내가 환상 속에 있지는 않나?’
‘내 가족에게 나는 어떻게 보이고 있나?’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보고있나?’
‘나는 전보다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나?

내가 내 자신에게 던지는 실존적인 질문으로부터 생존하는 것이 프리워커의 삶이다. 그래서 매일 모기떼 같이 달려드는 이런 불편한 질문들에 시달렸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넉살좋게 넘어갈 수 있었지만 컨디션이 저조할 때 그런 질문들을 받으면 무척 자존심이 상하고 막막해졌다. 차를 타고 가다가, 샤워를 하다가,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가 이유도 없이 이런 질문으로 내 자신을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그래서 그런 내 마음을 챙기고, 일상의 생기를 찾고,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노하우가 절실해졌다.

마음이 안정되면 우리는 외부 자극에 더 너그러워 진다. 그 때 우리는 더 극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나에게도 마음을 가라앉힘으로써 창의적인 자극을 받게 만들고, 프리워킹의 삶을 준비시켜준 7가지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7가지 요소는 삶의 순간, 순간에 약해지는 나의 마음을 잡고, 스스로 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길 수 있도록 단련시켜준 나만의 서바이벌 매뉴얼이다. 혼자 힘으로 매뉴얼이 생긴 건 결코 아니다. 책이나 유튜브(Youtube)의 랜덤한 채널을 통해, 처음 만난 사람과의 대화에서, 순간적으로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서 나는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노하우를 배웠다. 어찌 보면 상대는 준 적이 없는 수업을 나 혼자 받은 셈인데, 성인의 삶이란 그렇게 주는 사람 없는 수업을 혼자 받는 것의 연속인 듯하다.

갑자기 재밌는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미국에 있을 때, 친구가 데려간 철학 강연에서 강연자가 했던 말에 큰 위로를 받은 적이 있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원어로 받아 적고 정성스럽게 번역 한 후 한참을 마음에 새기고 살았다. 그 말은 당시 힘든 상황이었던 나의 삶에 지침서가 되어서 그 시절을 무사히 지날 수 있게 해주었다. 시간이 지나 페이스북에서 공유하려고 원문을 다시 보니 내가 완전히 오역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것도 모르고 번역본을 지갑에 넣고 늘 읽으며 다녔으니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황당함도 잠깐, 내 마음에 큰 안도감이 찾아왔다. 제대로 번역되어도 여전히 훌륭한 글 이였지만 결코 나에게 힘을 줄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 때 잘못한 해석으로 힘들었던 한 시절을 무사히 넘겼으니 그 실수가 얼마나 다행인지! 인생수업들은 언제나 이렇게 상상 밖의 모습으로 숨어있다.

이 글에 나온 많은 에피소드들도 다양하게 해석 될 수 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나에게 매우 사적인 경험이었던 것처럼 독자에게도 고유하게 해석되고 다가갈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우리 모두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별 것 아니었지만 나에게 큰 영감을 준 삶의 순간들. 그럴 때는 그 순간과의 긴밀한 운명이 느껴지기도 하고, 마치 세상이 개인과외를 해준 듯 특별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글이 그런 경험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