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비즈니스모델

경험과 기억을 넘어 추억을 파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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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고객과 만나는 접점은 실로 다양하다. 직접 대면하는 매장에서도 만나지만 디자인, 광고, SNS 등 간접적으로 만나는 경우도 많다. 고객과의 만남에서 생성되는 경험은 기업의 이미지와 직결된다. 그래서 모든 기업은 고객과 만나는 모든 접점을 관리한다. 이른바 고객경험관리(CEM)이다.

그런데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고객경험관리를 넘어 ‘고객추억관리(Customer Remembrance Management) 시대로 넘어왔다. 추억이란 무엇일까? 추억은 기억의 일부다. 그리고 그 기억은 경험에서 나온다. 다시 말하면 먼저 경험을 하고, 그 경험 가운데 일부는 기억으로 남으며, 그 남은 기억 중에 일부가 추억으로 되살아난다. 게다가 경험과 기억은 좋기도 나쁘기도 하지만 추억은 행복하고 아름답게 남는다.

요즘처럼 경기가 좋지 않고 삶이 외로울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어머니, 고향 그리고 친구일 것이다. 과거 구글에서 검색순위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 ‘어머니’가 단연 1위였다. 그때가 바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인 점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힘들고 허무할 때 바로 ‘아름다운 추억’으로 위로를 받기 때문일 것이다.

던롭스포츠코리아는 매년 부자(父子)골프대회를 연다. 올해도 50개 팀을 모집했는데, 순식간에 300팀 가까운 지원자가 몰렸다. 던롭은 1박2일 동안 골프 외에도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평소에 다소 어색할 수 있는 부자간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한다. 이렇듯 고객의 추억을 브랜드에 입힘으로써 록인(lock-in)효과를 얻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얼마 전, 치킨 프랜차이즈업체인 멕시카나는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과 함께 ‘불닭치킨’을 출시해 인기를 얻었다. 제조업체의 불닭볶음면 소스에다 로드샵을 가진 가맹본부의 불닭치킨간 조합은 단지 통합메뉴 출시라는 이벤트가 아니다. IMF외환위기 때의 매운맛에 대한 추억을 소환해서 고객들의 마음을 이끌어낸 것이 주효했다.

그렇다면 요즘처럼 추억이 필요한 시기에 가장 어울리는 소박한 비즈니스모델은 어떤 것이 있을까?

재개발로 도시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윌리지’를 무대에 올려 호평을 받은 ‘캔디뮤지컬컴퍼니’의 박민강 대표. 그는 최근 ‘자신의 노래’를 작곡해 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뮤지컬 공연이 끝나면 관객 가운데는 자기 얘기를 대신해 주는 것 같아서 큰 위로가 됐다는 소리를 많이 들으면서 이 사업의 필요성을 느꼈다. 평생 남의 노래로 위로를 받다가 가느니 자신의 굴곡진 삶을 노래로 부른다면 힘들 때 훨씬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노랫말은 의뢰인의 인생 얘기로 엮고, 작곡은 의뢰인의 코드에 맞춰 쉽게 부를 수 있게 해준다. 1~2개월의 연습을 통해 자신의 노래를 녹음할 때, 대부분은 우느라 제대로 노래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 지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이어져 나와 감정을 억누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레이아웃’의 이정인 대표는 자서전 출판대행업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비교적 성공한 이력을 가진 대기업 임원에서부터 겉으로는 성공했다고 보기 어려운 노점상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사람들의 상담을 신청한다. 이들이 출판을 하려는 이유는 한결같이 “지나온 삶의 궤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라고 한다.

장난감병원도 잘나가는 추억 비즈니스다. 아이들은 헤진 장난감이라도 애착이 크다. 비단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어릴 적 추억이 담긴 장난감을 계속 갖고 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출가하는 딸에게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장난감을 간직했다가 들려 보내는 부모도 많다. 어떤 값나가는 선물보다 어릴 적 추억이 온전히 담긴 장난감이 훨씬 더 와 닿으리라 생각된다.

제주도의 한 사회적기업가는 노인부부 여행을 사진첩으로 만들어 주는 사업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노인부부가 제주공항에 내려서 여행하는 동안 몰래 따라다니면서 사진을 찍어 출도하는 순간에 사진첩을 전달해 준다. 이러한 이벤트는 자녀가 미리 계획해 사전에 의뢰한다. 부모는 받아든 순간 대부분 감격스러워 한다고 한다.

요즘 일본에서는 은퇴자를 위한 소학교 수학여행 프로그램이 인기다. 현역에서 은퇴한 사람들이 과거 친구들과 수학여행을 갔던 바로 그 장소로 단체여행을 가는 프로그램이다. 치열하게 사느라 오랫동안 소원했던 친구들과 옛 추억을 되살리며 함께 나누는 정은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으리라.

‘점포 없는 꽃집’도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지금까지는 플로리스트가 꽃을 만들어 놓고 의례적인 인사말을 붙여 판매하는 수준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사연을 꽃으로 표현하는 소위 ‘스토리텔링 꽃’을 만들어 보내준다. 예컨대 결혼을 앞둔 남자가 예비신부에게 꽃을 보내고자 하면 결혼하기까지의 에피소드나 미래의 소망 등을 글이 아닌 꽃으로 연출하는 것이다. 점포 없이 오직 온라인으로만 판매하지만 매출은 오프라인 점포를 능가한다.

우리 정서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은 추억비즈니스도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세이브마이 잉크포에버’는 죽은 사람의 피부에 새겨진 문신을 떼어내 따로 보관할 수 있게 한 서비스업체다. 창업자는 친구의 죽음을 보고, 그의 문신으로나마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서 이 사업에 도전했다. 유골을 항아리에 넣고 이름을 새겨 보관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도전해 5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 외에도 과거에 즐겨 입었던 의류를 업사이클링해 주는 사업, 과거에 읽고 감동을 받았던 책에 예술을 입혀 작품으로 만들어 주는 북아트(Book art), 7080세대를 위한 음악다방 등 다양한 비즈니스모델들이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경제와 전염병은 트레이드오프(Trade off)관계에 있다. 만일 코로나19가 장기간 지속되는 엔데믹(endemic)으로 간다면 사람들은 더욱 힘들고 우울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위로가 필요하다. 그 위로는 추억을 소환할 때, 비로소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KB국민은행 경영자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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