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잊은 그대에게

만일 밤잠을 설치고 ‘이방인홈’에 들렀다면 이 글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 글은 15년 전, 2004년 1월에 펴낸 ‘아침형 인간, 강요하지 마라(이형석 외 18명 공저,청림출판)에 썼던 글이다. 

지난 늦겨울, 곧 40대가 되는 후배 직장인이 보내온 준 편지가 나를 슬프게 했다. 하도 우울한 내용이라 그 날 저녁 분위기 있는 연희동의 한 작은 카페에서 한탄하는 소리를 무려 세 시간이나 들어줘야 했다. 그는 좋은 대학에서 공부도 잘했고 잘 생겨서 대기업에 단번에 들어가더니 돈 많은 아내를 만나 잘 살고 있는 사내다. ‘잘 살고 있다’는 말은 남들이 그를 두고 그렇게 말하니까 그냥 옮겨 본 소리다. 다음의 편지를 보면 느낌은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06:00 자명종이 나를 깨운다. 엊저녁에 먹다 남은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먹고 혹시라도 곤히 잠든 마누라가 깰까 봐 뒷꿈치 들고 조용히 현관을 빠져 나온다.

07:30 회사 도착. PC를 켜고 메일을 확인한다. 이놈의 스팸은 왜 이리도 많은지 일도 하기 전에 손가락이 벌써부터 쥐가 난다. 꾸역꾸역 아주 천천히 화장실을 다녀와서 자리에 앉는다. 지겨운 회사에서 고뇌의 하루가 시작된다.

18:00 영어학원엘 간다. 보기도 싫은 영어, 언제까지 해야 할지 모르겠다. 기억세포는 점점 파괴되서 결혼기념일도 제때 기억나지 않는데…학원엘 가니 죄다 파릇파릇한 20대 투성이다. 그동안 나는 무얼 하다가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여기 앉았는가?

21:00 초인종을 누른다. 애는? 밥 있어? 문 열어주고 눈이 마주치기도 전에 돌아서는 시큰둥한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헛기침을 하고 들어서지만 마음은 벌써 주눅이 들어있다. 어제 아내의 여고동창생이 크릴전문점을 해서 돈벌었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혹시 연속극으로 엮어질 것이 두렵다.

23:00 내일 일찍 일어나려면 자야겠다. 아내와 좀더 붙어 있다간 애들 교육비 타령을 어제에 이어 또 세뇌교육을 받게될지 모를 일이기에…아! 나는 오늘 무엇을 하느라 내 영육의 에너지를 소모했는가? 보람이나 성취감도 없이 또다시 내일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오겠지? 에라 모르겠다. 그냥 자자. 내일은 좀 나아지겠지.

이 후배가 들으면 서운해할지 모르지만 이 녀석은 자나깨나 공부밖에 모르던 녀석이다. 아침운동을 단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는 선생님이신 아버지를 둔지라 그 역시 늘 새벽공부에 이력이 나 있는 사람이다. 술기운이 들 무렵, 그가 내뱉듯이 던진 한마디. “아침형 인간이면 성공한다는데 새벽같이 일어나 공부했고 지금은 출근도 새벽같이 하는데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입니까?”

사실 이 후배는 요즘 취직조차 어렵다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고 두 딸을 예쁘게 잘 키워온 단란한 가정의 모범적인 가장이다. 권리는 없고 자식에 대한 책임과 아내에 대한 의무만 남아서 자신을 다람쥐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 그의 불만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다보니 인생의 목적이 ‘가치’에 있는 게 아니고 ‘생존’에 있는 듯한 느낌이 싫다는 얘기다. 삶의 의미를 다시 곱씹어보는 계기가 됐지만 어쨌든, 공부 잘해서 대기업만 다닌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닌 듯 하다.

라스베가스의 밤

얼마 전, ‘포스데이타’에서 보내온 사외보를 넘기다가 음미할만한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종달새 족과 올빼미 족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사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본 결과 올빼미 족이 70%나 됐다. 물론 올빼미 족은 밤늦게까지 활동하며 밤에 정신이 더 맑고 집중이 잘되는 유형의 사람들을 말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하기 바쁘다고 응답한사람도 62%였다. 이 회사 정도 들어갈 수준이면 흔히 말하는 ‘아침형 인간’이라 할 수 있는 종달새 족이 더 많아야 하는 건 아닐까 싶은데도 말이다. 요즘 하도 아침형 인간 추종자들이 많아서 겁먹고 있었는데 이렇게 올빼미들이 더 많은 걸 보니 이들 우군(友軍)의 힘을 빌어 이 기회에 나도 올빼미임을 밝혀도 될 듯 싶다.

나는 아침보다 밤을,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심야를 훨씬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밤의 예찬론자이며 밤의 전도사다. 내게 있어서 밤 11시는 초저녁이며 심야 2시까지 통화하는 건 이제 일상이 됐다. 초저녁 약속은 비즈니스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늦밤에는 주로 언론인이 많으며 심야 대에는 주로 가까운 이업종(異業種) 전문가들이나 학생들과 만난다. 밤을 선호하는 것은 아마도 내 타고난 성향이 아닌가 싶다.

내게 좋아하는 단어 세 개만 고르라고 한다면 망설임없이 “밤, 비, 고독”을 선택한다. 심리학에서는 어떻게 해석할지 모르지만 내 스스로는 “게으르고 우수에 젖은 내향형의 이방인” 타입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나는 새벽공부를 한 적이 단 한번도 없는 늦잠꾸러기에다 큰 싸움 한번 걸어 본 적이 없는 졸장부에다 그것도 모자라 여학생들이나 느낄 법한 우울한 분위기나 좋아하는 수줍음 많고 말 못하는 소년이었다.

통상적 관념으로 보면 그런 게으르고 늦잠꾸러기 소년이 지금은 창업컨설턴트라는 신 직종을 만들어서 창업컨설팅협회장도 하고 교수도 하고, 방송도 하고 언론매체 칼럼도 쓰는 꽤나 알려진 인물이 될 것으로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그래도 이만큼 하니까 다들 성공했다고 쳐주던데 그렇다면 그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그 시발점은 ‘한밤의 사색’인 “나는 누구일까?”로부터 시작했다고 확신한다.

오늘밤도 나는 30여 년 전에 스스로에게 했던 똑 같은 질문을 습관처럼 하면서 그 대답을 구하고 있다. “나는 누구이며 지금은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려고 하는 가?”라는 질문이다. 당시에는 인생을 철학적으로 풀어보려는 고매한 사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그렇게 고민해 보라고 가르쳐 준 것도 아니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모든 일은 나에게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연인 즉 이렇다. 아주 어렸을 때 오십 리 너머에 사는 시집간 누나 집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는데 바깥풍경을 보다가 문득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늘 고정되어 있던 나무가 뒤로 손살같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버스라는 걸 처음 타 본 나로서는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나무를 흔들어 봤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때마침 지나가는 버스를 보고서야 비로소 한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세상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렇게 나름대로 철학적 정리를 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17세 때다. 서론이 길었지만 “세상은 나로부터 출발한다”는 귀납적 접근을 하게 된 배경이다. 세상의 중심이 되는 나, 나를 알지 못하면 결코 더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변함 없는 나의 신념이다. 이렇듯 밤은 나를 알게 도와준 귀한 시간이었으며 내게 어울리는 수익모델도 덤으로 알려주었다.

괜히 복잡하게 말한 것 같은데 한마디로 표현하면 “知彼知己 百戰百勝”이라는 말이다. 만사는 나로부터 출발한다고 보았다. 이 정도 사자성어를 모르는 이가 있으랴 만은 창업상담을 해보면 이러한 접근을 하는 사람은 생각 밖으로 많지 않은 것 같다. 세상은 늘, 일찍 일어나라, 일하면서 뛰어라, 태양과 같이 살아라 등 일반적인 성공요인을 나열한다.

남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까 나도 일찍 일어나야 하고 남들이 좋은 대학을 가야 하니까 나도 가야한다면 결국은 스스로 우열의 반열에 올려놓고 평가를 기다리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을 타인에게 기준을 두고 연역적 방법으로 풀어가려는 것은 자신에 대한 무책임이며 언어도단이다. 만일 이러한 기준에 의해 열등으로 결정된다면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공포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도 일렬로 세워놓고 선착순으로 우열을 가리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지금은 인터넷이 상징하는 바, 네트웍시대다. 네트웍은 수평으로 병렬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상하관계가 획일적이고 고착화된 사고(思考)가 아닌 각각의 개성과 마인드가 존중되는 수평적 개인화(personalization)시대가 도래했다는 의미다. 각각의 가치와 평가가 다르고 기능과 효율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고정된 잣대로 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다소 억측처럼 들리겠지만 아침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패스트푸드(Fast food)형이고, 밤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슬로우푸드(Slow food)형이다. 지금은 패스트푸드를 넘어 슬로우푸드가 웰빙(well being) 바람을 타고 크게 성장하고 있다. 동적(動的)인 것에서 정적(靜的)인 것으로 패러다임이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침형 인간, 퇴근시간 모습

 

다음을 보자.

/하늘/이 좋아지면 꿈이 있는 것이고
/음악/이 좋아지면 누군가가 그리운 거다

/여행/을 가고 싶다면 마음이 허전한 것이고
/봄비/가 좋아지면 누군가를 기다리는거다

/별/이 좋아지면 외로운 것이고
/어머니/가 그리우면 지금 몹시 힘들다는 증거다

예측컨대 위 문장에 동화되어 쓰리쓰리한 느낌이 온다면 십중팔구는 밤을 선호하는 올빼미족일 가능성이 크다. 경험에 의하면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은 대체로 조용하며 내성적이고 격한 운동을 싫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에게 업종을 추천한다면 시공(時空)을 초월해서 할수 있는 비즈니스가 가장 좋다. 고학력자라면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Contents) 제공업이 아주 좋다. 언제 어디서나 시간과 공간의 제약없이 일을 할 수 있어서 굳이 ‘아침일찍’을 고집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단지 한마디로 콘텐츠 제공업으로 표현했다고 해서 업종이 하나인 것은 물론 아니다. 컬러링서비스, 주가예측정보, 운세정보 등 이미 고전이 된 콘텐츠도 있지만 사인(sign)서비스업, ‘거지여행’과 같은 관광콘텐츠, ‘여의도 참새’와 같은 시사콘텐츠도 있다. 자신의 특기나 취미를 살릴 콘텐츠로도 얼마든지 창업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지금도 ‘콘텐츠’라는 단어는 듣기만 하면 가슴이 설렌다. 성패의 갈림길에서 나를 구제해 준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다. 지금이야 모두들 아는 단어이고 너도나도 콘텐츠 사업에 뛰어들어 젊은 갑부가 많이 나왔지만 93년 당시만 해도 콘텐츠라는 말은 없었고 대신 정보제공업(IP)이라는 사업아이템이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창업컨설팅이 일반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컨설팅을 시작한지 5년이 지나도록 안정된 수익모델이 없어서 성패의 기로에 섰을때였다. 그 때 1분에 500원 하는 정보인 ‘이형석의 추천사업’이나 ‘유망사업정보’ 등을 천리안과 하이텔에 서비스하게 됐는데, 자고 나면 이용료가 매일 수 십만원씩 올라올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정보로 발전했다.

사용시간을 한시라도 먼저 보기 위해 전날 이용시간이 정산되는 익일 새벽 3시까지 기다렸다가 시간을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면서도 행복했던 시절이다. 게으르고 늦잠꾸러기인 내게는 밤낮 구분 없이 일할 수 있는 이보다 더 좋은 아이템이 없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정보제공업이 뉴비즈니스로 정착될 것을 예측하고 IP(Information provider)컨설팅 팀을 두었는데 그 예측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 언론으로부터 ‘IP의 대부’라는 별칭도 얻었다. 그 당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여 턴키로 판매하곤 했는데 주로 늦은 밤, 잠자리에 들 즈음에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했다. 하루 밤에 언뜻 떠오른 아이디어 덕분에 자고 나면 수 천만 원의 상품으로 개발되서 주인을 찾아가곤 했던 꿈같은 시절이었다.

다시 심야족에게 어울리는 몇 가지 업종을 보자. 전자상거래(EC)도 아이템의 독점성, 차별성 등이 담보된다면 단품이라도 승산이 있다. 인터넷이나 모바일(mobile) 등 디지털 도구(tool)들은 밤을 즐기며 일하려는 올빼미들의 깃을 더욱 빛나게 도와준다. 숙명여대 대학원생인 황윤정씨(31)는 골드버그(www.goldbug.co.kr)에서 목걸이 하나로 월평균 3백만원을 벌고 있고, 김경화씨(35)는 부산에서 커플룩 하나로 세명의 직원과 함께 잘 꾸려가고 있다. 옥션에서 하자명품으로 돈 벌고 있는 oo씨나 ‘핸드메이드 곱창’으로 오프라인까지 영역을 넓힌 조형석(30)씨도 밤을 즐기며 일하는 사람들이다.

오프라인에도 심야비즈니스 아이템은 널려있다. 밤새 북적이는 찜질방에다 2시에 시작하는 ‘26시 영화관’ 좌석이 매진될 때도 있을 만큼 심야를 즐기는 고객이 있는데 아이템이 없을 릴 없다. ‘군것질꾸러미’ 배달업을 궁리해 보자. 요즘 각 대학마다 우수학생 유치를 위해 기숙사가 부쩍 많아졌다.

이들은 밤 11시까지는 입사(入舍)해야 하는데 그 이후에 군것질을 할 방법이 없다. 모바일이나 인터넷을 통해 주문받아 배달해 주는 사업인데 옛날 ‘찹살떡’ 장사를 연상하면 쉽다. 이를 확대해서 ‘모바일 shop’이나 ‘메신저 shop’을 오픈해도 잘될 것이다.

심야학원도 곧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특히 ‘커플영어학원’은 차리면 대박이 아닐까 싶다. 대리운전이나 번개팅 주선업은 익히 알려진 아이템이지만 성인DVD대여업, 팥죽배달업 등도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 강아지를 좋아한다면 애견놀이방도 권하고 싶고 극장을 재임대 해서 ‘엔젤서치시네마’도 구상해 봄직한 아이디어다. 나홀로 족들이 짝을 찾도록 자리배정을 도와주는 극장으로 매일 24시 타임에만 적용하면 좋을 듯하다.

이렇듯 올빼미 족에게 어울리는 아이템은 많다. 밤잠이 없는 독자 여러분도 굳이 아침형으로 바꾸려고 애쓸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아침은 단기(short term)업무 계획을 궁리하는데 좋다면 밤은 장기(long term)업무 기획을 하는 시간으로 유용하다. 아침보다 되려 밤이 창업과 같은 큰 그림을 그리기에 안성마춤이라는 뜻이다.

언제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 애쓰느라 스트레스 받으면 아마 그만큼 삶의 끈이 짧아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은 옛말이다. 먹을 게 벌레만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젝웰치나 빌게이츠가 아침형 인간이었기에 성공했는지는 확인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며, 그들만큼 돈을 벌어야 인생의 가치가 있는지도 벌어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결코 그들만이 모델이 될 수는 없다. 삶의 가치는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아침이 생리적으로 혹은 의학적으로 어떤 점에서 유리한지는 알지 못하며 관심도 없다. 단지 나는 ‘조용히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여유와 낭만이 있는 밤’이 좋다. 그 뿐이다. 왜냐하면 밤을 즐기면서 게으름을 피웠어도 지금 이만하면 성공했지 않은가?

이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