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단어 모르면 답답하지 않아?

오래 전, 구제역이 전국을 강타할 즈음 “구제역이 뭐지?” “그야 양재역 다음역이지”라는 우스개 소리가 유행했다. 당시 신종플루도 엄청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전염병이 아니라 디지털 전염병이 사람을공포스럽게 한다. 오늘 좀 공부했나 싶으면 내일 또 전혀다른 단어가 나와서 곤혹스럽다.

이렇듯 우리가 살아가는데 이러한 전염병만큼이나 주눅들게 하는 것이 신조어인것 같다. 디지털이라는 말이 일반화될 즈음 CF에 시골아낙이 나와서 디지털을 “어? 돼지털?”라며 태연하게 되받아치는 광고가 한동안 우리를 웃게 만들기도 했다.  그 즈음 새롭게 등장한 신조어들은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나이든 양반들’과 주부들을 현기증 나게 만들었다. 머리에 쥐나서 못살겠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디지털 문화 속에서 산지 꽤 오래 됐으니 익숙할만도 한데 갈수록 더하다. 

사실 94년만 하더라도 인터넷으로 무역을 하고 물건을 팔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하니까 기자들조차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서 기초적인 교육부터 시킨 다음 인터뷰를 하곤 했다. 당시 TV에서 뉴스 인터뷰를 하고나서 보면 자막에 “이형석 인터넷 전문가”라고 소개되던 시절이다. 지금 인터넷 전문가라고 하면 소도 웃을지 모를 일이다.

중학교에 다닐 때, 참으로 구분하기 어려웠던 단어가 ‘픽션(fiction)과 논픽션(nonfiction)’이었다. 파시즘이니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이해를 쉽게 하지 못했다. 단어장을 찾아봐도 우리말 해석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 단어들이었다. ‘미시경제와 거시경제’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가 하면 30대 초까지도 ‘전채요리’가 ‘요리 전체(全體)’인줄 알았지 ‘좌석에 앉아 처음 받는 식욕촉진 음식’ 즉 안티파스토(Antipasto)인줄은 몰랐다. ‘돌체’가 음악다방 이름(80년대 종로에서 유명했던 다방이름)이 아니라 디저트라는 의미(Dolce)라는 것도 이때쯤에 알게 됐다. 그럼 ‘일품요리’는 ‘폼나는 요리’일까? ^^

오늘날 내게 비록 얕지만 지식을 상품으로 먹고 살게 한 원동력은 바로 “단어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됐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궁금하면 못 참는 지식의 얼리어답터 기질이 좀 있었던것 같다.  10대 때 무식함이 탄로날까봐 대화중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앞뒤 문맥에 연결 지어 해석해 보려고 안간힘을 썼고, 그래도 모르면 화장실 간다며 몰래 메모해 뒀다가 대학의 해당학과 조교에게 전화를 해서 급히 물어보곤 했다.

트렌드(Trend)를 이해하는 기간도 꽤 오래 걸렸다. 사전에 찾아보면 우리말로 ‘경향’으로 나온다. 더 모르겠다. 다시 경향을 사전에서 재차 찾으면 “[명사] 1. 현상이나 사상, 행동 따위가 어떤 방향으로 기울어짐.”이렇게 풀어서 설명해 준다. 그래도 도대체 이해가 잘 안된다. 결국 사례 몇가지를 보고서야 확실하게 이해됐다. 그래서 그 답답함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줄까?” 생각하다가 다음과 같은 예로 설명했다.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어.
공을 치는 순간, 타자는 이 공이 단타가 될지, 파울이 날지, 홈런볼인지 직감적으로 알게되지.
단타를 유행(Fad)라고 하고, 

2~3루타를 우리는 트렌드라고 해.
그리고 타자를 트렌드 워처(Trend watcher)라고 하는데 프로일수록 감이 뛰어나겠지?

예가 더 어렵다구? ㅠ

당시 일부 명문대 국문과, 경영학과 조교들은 아마 내 전화를 수없이 받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니 알 길이란 게 고작 대학뿐이었기 때문이다. 조교도 몰라서 나중에 다시 알려주면서 친해진 사람도 있다. 바로 그 때로 찌든 메모장을 잠시 알고 지내던 동사무소 공무원이 빌려 달래서 줬다가 못 받은 것이 지금도 아쉽게 느껴진다.

그래서 몇 권을 소장하고 있는 나의 비망록(Memorandum)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비록 지금은 그 기능을 에버노트가 해주긴 하지만… 

단어 하나가 갖는 의미는 실로 크다. 단지 하나의 단어라고 치부될지 모르지만 하나의 사회현상이 압축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중요한 단어 하나를 모르면 문맥상 흐름이 뒤죽박죽되어 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내가 모르는 단어라면 학술용어나 의학용어가 아니라면 상당부분 신조어일 가능성이 높다. 신조어는 왜 만들어지는걸까? 그건 바로 현존하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선진국의 단어 수가 더 많다. 우리는 외래어라는 이름으로 그걸 그대로 갖다 써야 한다. 그렇기에 신조어를 공부하면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있어서 자연스럽게 당장 써 먹을 수 있는 지식이 쌓이게 된다.   

이런 지식을 융합해서 앞뒤로 보는 것을 트렌드라 하고, 앞으로 길게 늘려 보는 것을 패러다임이라 한다. 

이러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요즘 논술이니 창업이니 그 어느 분야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든 성공의 첫걸음은 바로 이 작은 단어들에서 시작된다고 감히 확신한다. 여러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면 서로의 단어가 마치 거미줄처럼 이어져서 글을 쓰는 것은 물론 사고력 향상, 판단력에도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모르는 단어가 대충 사라지자 나는 단어를 넘어 콘텍스트(Context)와  프레임(frame)에 관심을 뒀다. 하나의 문장이나 칼럼을 프레임으로 설명해 보려는 시도다. 텍스트를 이미지화하려는 시도라고 이해해도 좋다. 이러한 노력은 기획력과 연쇄사고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지금은 하나의 현상을 보면 그 다음이 순식간에 그림처럼 그려진다. 인생설계도 마찬가지이며 사업 역시 그렇다.

그래서 신사업을 연구할 때는 항상 ‘그 다음’, 즉 확장성을 염두에 두고 그려간다. 단지 그 자체만으로 끝나는  비즈니스 모델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지금 관심분야인 트렌드, 빅데이터, 뇌과학, 복잡계 등도 바로 연쇄사고의 촉매제이자 프레임의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료들을 통해 비즈니스모델을 분석하고 설계하는 일이 습관이 됐다.

가끔 창업멘토링을 하다보면 음식점 몇년 한 사람이 뜬금없이 내뱉는 한마디를 듣게 된다. “뜬구름 잡는 공부가 무슨 필요가 있어! 창업해 보니까 직접 경험하는게 최고던데..” 라든지, “우리에게 당장 급한 건 돈 버는 것이지 공부가 아니야~” “돈 버는 방법만 알려주면 되지 무슨 숙제를 하라는 말이야” 등등…

물론 대 놓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그런인상을 받을때면 상처를 받곤한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 안가서 그 말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알게 될 것이기에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그런 사람은 로또번호를 콕 찍어줄 도인을 찾아가는 게 현명하다. 그러나 이들이 “공부한 기간만큼 창업자금도 비례해서 줄어든다”는 점도, “그 사업을 통해 그만큼  가치있는 인생을 살 조건이 만들어진다.”는 점도 함께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돈버는 기계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