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고 사는 법

세계는 바야흐로 ‘프렌데미스’(Friendemies) 시대, 즉 모호성의 시대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국가안보 전문가인 데이비드 로스코프는 2005년에 발간한 그의 저서 ‘세계경영(Running The World)에서 냉전 이후 국제사회를 이같이 정의했다.

프렌데미스란 친구(friend)와 적(enimies)의 합성어로, 국가간에는 ‘친구이자 동시에 적’이라는 개념이다. 즉, 친구이면서도 때로는 적이 될 수 있고, 적이면서 동시에 친구로 대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의미다.

‘고슴도치딜레마’란 말도 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고슴도치들이 서로에게 바싹 다가가지만, 다가갈수록 몸에 돋친 가시가 서로의 몸을 찔러 몸엔 상처가 날 뿐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고슴도치는 영어로 ‘가시가 있는 돼지’라는 포큐파인(porcupine)이며, 쇼펜하우어는 호저(豪猪,hedgehog)라고 표현했다. 어떤 이는 호저라는 동물이 따로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두 단어 모두 고슴도치를 뜻한다.

한편, 딜레마(dilemma)란 양도논법(兩刀論法)을 말하는데 진퇴유곡의 난처한 지경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결국 고슴도치딜레마는 “서로 필요로 하지만 다가가기 어려운 관계”를 두고 하는 말인 것이다. 우리의 인간관계에서 보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랄까?

불가근 불가원(不可近不可遠)도 비슷하다. 가까이 하기도 어렵고 멀리 하기도 어려운 관계를 말한다. 지금의 한일관계를 보면 딱 이런 경우 같다. 그런데 프렌데미스든 고슴도치이든 때로는 쓸모가 있는 상대여서 불가근불가원으로 적절히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맞다’의 반대말은 ‘틀리다’이고, ‘같다’의 반대말은 ‘다르다’이다. 하지만 때때로 ‘같다’의 반대말은 ‘틀리다’로 잘못 쓰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나와 견해가 다를지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의견이 접근할 수 있는데, 나와 다른 생각은 모두 틀렸다는 독선과 아집 때문에 토론조차 해보지 못하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끝나고 만다. 지금 대한민국의 여야(與野)가 그렇다.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적과의 동침’이란 말이 대기업에서는 자주 등장한다. 삼성의 노트10에 경쟁기업인 LG화학 배터리를 탑재한다거나 삼성의 이미지센서 기술과 경쟁사인 샤오미의 스마트폰 카메라와의 결합 등이 좋은 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다. 주변에 보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필요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싫다고 모두 멀리해 버리면 필요할 때 협력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간까지 쑥 빼 주면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생긴다. 그래서 ‘불가근불가원’이 가장 적절한 처세술이 아닌가 싶다.

다행히 나는 좋아하는 사람만 골라서 만나도 될 만큼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좋다. 그 여유로움은 금전적 여유가 아니라 바로 나이덕분이다. 욕심부리지 않으면 지금 휴대폰에 저장된 사람 가운데 좋은 사람만 남겨도 여생을 충분히 아름답게 살 수 있다. 그래서 나이 들어가는 것이 참 좋다.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