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것과 친구되기

루이 씨케이(Louis C.K.)는 매 시즌 뉴욕 메디슨 스퀘어가든 무대를 매진시키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스탠드업 코메디언이다. 미국에 있을 때 그의 쇼를 너무 가보고 싶었지만 매번 빠르게 매진되어 번번이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코메디언이면서 딸 둘의 아빠인 그는 처음에 자신의 딸들에 대해 못마땅한 것을 거침없이 드러내면서 전 세계 부모들의 폭발적인 공감을 샀다. 사람들이 말하기 어려워하는 것을 가장 원색적이고,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단번에 많은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다.

예를 들면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거추장스럽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또 시간이 지나 배우자의 외모가 바뀌면서 섹스가 얼마나 권태로운지, 얼마나 자주 낯선 이성과의 이색적인 하룻밤을 꿈꾸는지, 이혼 후의 말도 못하는 홀가분함, 가장 진보적이라고 여기는 뉴욕 맨하탄에 살면서도 여전히 생기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거부감, 남미나 아시아 이민자들을 이유 없이 과소평가하게 되는 마음, 백인남성으로 살아가면서 드는 궁극적인 안도감 등, 그의 솔직함은 매우 파격적으로 이 시대 교양인들의 심리적 하수구 역할을 해왔다. 그는 독보적인 그의 코미디 루틴(일상적인 소재, 레퍼토리)의 비결에 대해 조금도 망설임 없이 부정적인 감정이 그 원료가 된다고 말했다.

“코미디는 실패를 통해서만 성공할 수 있다는 면에서 가장 정직한 직업이다. 당황의 땀이 쉴 새 없이 흐르는 지옥 같은 시간을 가져봐야 한다. 많은 코미디언들은 고생 끝에 한번 무대에서 대박이 터지면 ‘딴 것 시도하지 말고 이 레퍼토리를 밀고 나가자.’라고 생각한다.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 중 한명도 내 조크에 웃지 않고 침묵만 흐르던 지옥 같은 시간으로 결코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것은 몇 년 전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지옥 같은 시간’을 다시 초대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왜냐하면 그게 수프(원천, 공급처)이기 때문이다. 그 곳으로부터 쇼가 탄생하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코미디언이 나이가 들수록 더 재밌어지는 이유는 그들이 인생에서 더 많은 문제들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즉, 세상은 내게 계속 실패를 경험하도록 어마어마한 페이를 주는 것이다.”

실패하는 곳에서 쇼가 탄생한다는 루이의 말은 나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나는 종종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과 정말 싫어하는 것에 대해 리스트를 만든다. 그 때마다 싫어하는 것의 리스트가 언제나 한참 더 길다. 왜 그럴까? 나의 경우, 아는 것이 많아지고 경험이 늘어날수록 기준이 높아지고, 용납이 안 되는 것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맘에 들거나, ‘딱 내 스타일이야!’ 싶거나, 오랫동안 마음을 바쳐 좋아하는 것들은 드물어진다. 미술 대학원을 다니고 있던 몇 년 전, 작품에 대한 구상을 하며 머리를 쥐어뜯다가 갑자기 그런 현상이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맘에 안 들어 하거나, 싫어하는 것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면 어떨까?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흉한 것, 내 눈을 끄는 특별한 것보다 전혀 눈길이 안가는 평범한 것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면 어떨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영감을 얻고, 구상할 수 있는 자료가 훨씬 많아 질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에 원하지 않은 일에 휘말리고, 원했던 것을 잃고, 자존심이 상했던 때를 생각해보자. 만약 내가 그 때의 죄책감을, 수치심을, 두려움을, 상실감을 현재를 살아가는 힘으로 인식할 수 있다면 어떨까?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나 자신을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다.

“불행감과 친구가 되세요. 행복감은 한 순간이고 불행감은 한 시절입니다. 행복감은 순간이기 때문에 그것을 좇으면 느끼자마자 사라지고, 불행감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불행감과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당신은 영원을 갖는 비결을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이사이에 찾아오는 행복감을 보너스로 여기며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스페인의 유명한 사진심리치료사 크리스티나 누네즈(Christina Nunez)가 2013년에 자신의 워크샵에서 한 말이다. 당시 통역을 맡았던 나는 그녀와 30센치도 안 되는 거리에서 이 이야기를 통역하며 온몸으로 전율을 느꼈었다. 바늘 끝 같은 특별하고 아름다운 것에만 사로잡혀있을 때는 온 세상이 수준이하의 것들로만 가득 찼었지만, 부정적인 것과 친구가 되니 세상은 나에게 영감을 주는 많은 것들로 꽉 차 있었다.

제2의 강점

나 역시도 오랫동안 잘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금방 인지하고 반성하면서, 실제로 잘 하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정말 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정도는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것 아닐까?’하고 경계 하는 것에 익숙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칭찬을 해도 ‘저 사람이 잘 몰라서 그렇지. 내가 사실 얼마나 허술한데…’라고 생각했다. 내가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어린 시절 내내 꽤 자신만만한 소녀였다고 기억한다. 원하는 건 다 이루면서 자랐고 그에 따른 칭찬과 인정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주눅들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나가니 약점을 보완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에 ‘내가 무엇이 부족 한가’ 에 집중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점에 대해 스스로 비판적이었던 나의 성격은 어쩌면 내가 나 자신을 구석으로 몰음으로써 그 약점이 야기한 문제들과 죄책감으로부터 사실은 회피하려는 심리적 기제였을 지도 모른다. ‘나는 원래 이런 거 잘 못해.’라고 인지하면 실제로 벌어진 상황을 책임지고, 해결하는 것으로부터 어느 정도 면피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부족함을 스스로 지적하는 경험이 반복되면 즉각적인 마음의 불편함은 줄어들지 몰라도 내가 인지하는 나라는 사람의 자화상은 일그러질 수밖에 없다.

성인이 되면 죄책감, 가치판단, 수치심, 열등감으로 부터 보호된, 훼손되지 않은 담담한 자화상이 필요하다. “나는 **한 강점이 있다.” 이 문장을 똑바로 구사할수록, 그 점을 이용해서 타인과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시선이 외부로 옮겨진다. 저 문장을 잘 구사하지 못하면 시선은 계속 자신 안에 머물게 되고, 행동이 타인을 위하고 있어도 시선이 자신 안에 머무르고 있다면 그 결과는 끊임없이 불안정하다.

그렇다면 제 2의 강점은 무엇이며 왜 필요할까?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고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학생이 있다고 예를 들어보자. 또래에 비해 예술적 강점이 뛰어났던 학생은 그 강점을 이용해 좋은 디자인스쿨을 졸업하고 가고 싶었던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다. 학생시절부터 또래 안에서 그 분야로는 눈에 띄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학생들만 모인 디자인회사는 어떤가? 그 분야의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 있을 그 안에서 예술적 감각으로 경쟁하면서 눈에 띄기란 하늘의 별따기일 것이다. 경쟁력을 갖기 위해 고유의 영역을 만들어 줄 새로운 강점, 즉 제2의 강점이 필요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을 어디에서 찾을까? 그 대답은 ‘나의 약점’이다.

만약 그 학생이 예술적 감각은 좋았지만 평소에 사람들을 좋아해서 술자리 친구들과 만남이 잦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스스로 시간관리나 컨디션관리에 소홀한 것, 술자리 등에서 대인관계적인 실수가 생기는 것 등이 자신의 약점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시각을 바꾸면 그런 성격의 사람은 사내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가지고 단단한 팀웍을 유지하는 본드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대인관계상에서 실수를 많이 하는 점도, 잘 생각해보면 실수가 잦은 사람은 실수를 회복하는 탄력성도 그만큼 높다. 그런 사람이 만약 팀장이 된다면 팀원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면에서 다른 팀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구별될 것이다.

또 만약 저 학생이 평소에 본인이 하고 싶은 걸 찾거나, 또래처럼 관련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에는 관심이 적고, 시간이 나면 주말 알바를 해야 하거나 부모님을 돕는 데에 시간을 쏟을 수밖에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그런 본인의 환경을 약점으로 여길 것이다. 혹은 스스로 일에 대한 열정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자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타인의 어려움에 관심을 갖고, 경제적인 점을 해결하는 데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람이라면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 한번 일이 맡겨지면 끝까지 마무리를 짓고, 좋은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타날 때 다른 사람보다 큰 프로젝트가 맡겨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만약 저 학생이 디자인 외에 다른 예술 분야나, 전혀 전공과 관련 없는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어떨까? 스스로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그것을 약점으로 받아들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성격은 디자이너로써 외부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하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야할 때 두드러지는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약점이란, 없애고 보완해야할 존재가 아니고 두 번째 강점으로써 새롭게 이름을 붙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존재이다. 그렇게 찾은 두 번째 강점은 이미 첫 번째 강점으로 선별된 지점에서 나의 고유 영역을 결정짓는 유일한 땔감이 되기 때문이다.

이미 알고 있는 강점은 안전하게 잘 사용하고, 내 약점 뒤에 그림자처럼 붙어있는 강점 No.2를 찾는 일, 그래서 강점 노트의 두 번째 장을 빼곡히 채우는 일, 그게 내가 20대 후반에 내 자신과 했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또 후에 상담현장에서 자신의 약점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잘 분석하는 내담자들과 작업하는 데 이 방법을 많이 활용 했다. 그런 객관성은 자신의 두 번째 강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데 매우 중요한 특성이기 때문이다. 특히 커리어의 시작지점에서 자신의 강점에 대해 이성적인 방식으로 명확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한 20대의 학생들에게서 많은 효과를 보았다.

첫 번째 강점에 집중하느라 두 번째 강점은 크게 주목을 받거나 선택 받은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강점 역시 인생 전반에 걸쳐 그 모습이 드러나 있다.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첫 번째 재능으로 모인 동료들 사이에서 나를 돋보일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약점 뒤에 그림자처럼 붙어있는 두 번째 강점을 찾고 그것을 사용하는 일은 성인의 인생에 가장 탁월한 발견이 된다.

컴테라피스트 한혜연님

Epilogue

나는 아주 오래도록 미술을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화실을 나가기 시작해서 예중, 예고, 미술대학, 미술 대학원을 다녔으니 열 살 때부터 서른 살 까지 그림을 그린 셈이다. 어린 나이부터 겪어야 했던 4번의 입시는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 평가의 경험이 그랬다. 나보다 큰 존재가 나의 결과물을 평가하고, 그 결과가 나를 대표하게 되는 경험은 늘 두려움과 한 세트였다. 평가가 쓴맛이었다면 성취는 달콤했다. 좋아하는 선생님 입에서 칭찬을 듣고, 높은 성적을 받고, 가고 싶었던 학교에 합격하고, 크고 작은 전시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건 그 간의 불안함과 긴장감을 보상해주고도 남았다. 무엇보다 나를 특별하게 보는 시선과 관심은 아무리 받아도 질리지 않은 달콤한 보상이었다.

평가, 성취, 기대부응 등이 나의 10대, 20대를 대표하는 키워드였다면, 30대 이후 삶은 그것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하는 여정이었다. 자연히 키워드는 ‘나’, 또는 ‘나 답게 사는 것’ 이었다. 나답게 사는 것은 매우 복잡한 작업을 요했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기대와 욕구가 나의 욕구와 충돌할 때, 그래서 애써 둘 중 하나를 외면해야 할 때 무척 힘들었다. 어쩔 때는 나에 대해 민감해 질수록 사회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종종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가 모호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채 시간만 흘러가서 답답했다. 나답게 살려고 애쓰는 동안 정작 주변에 비해 뒤처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땐 정말 울적해졌다. 나답게 살아 갈수록 행복하기는커녕 괴로웠다. 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이런 나의 외로움이 많이 공감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의 기대로부터, 오랫동안 꿔왔던 꿈으로부터, 나의 욕구와 지키고 싶은 자존심으로부터 현재의 삶이 멀다고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그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삶을 지켜 왔을까? 무엇이 나침반이 되었을까? 어떻게 외로움 속의 평화로움을 보고, 부족함 속에서 여유를 느끼고, 우리 속에서 나를 세울 수 있을까? 기회가 된다면 당신의 라이프 매뉴얼도 들어보고 싶다. 프리워커의 삶은 이미 그 안에 있지 않을까?

컴테라피스트 한혜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