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두 얼굴

<상황1>

흰 피부에 금발머리를 한 서양인 청년이 테헤란로에서 지도를 펴 들고 행인들에게 길을 묻습니다. “삼성역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 되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부하지 않고 서툰 영어실력이지만 친절하게 답변을 해 줍니다. 때론 묻지도 않았는데 길을 찾는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20대로 보이는 두 여성은 일부러 다가가 친절하게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여행일정까지 물어봅니다.

이번에는 동남아의 한 청년을 서양인 청년처럼 상황을 연출해서 길을 묻게 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는 체도 하지 않습니다. 한마디 더 말을 걸세라 손사래부터 치고 지나갑니다. 한 시간을 넘겨가며 물어보지만 그나마 다가와 친절하게 가르쳐 준 사람은 불과 두세 명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보기로는 오히려 동남아 청년의 인상이 더 좋아 보였는데도 말입니다.

<상황2>

초등학교 2학년쯤 되는 여자아이를 모델로 고급 레스토랑 같이 <있어 보이는>배경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역시 같은 모델아이를 똑 같은 옷을 입혀서 산동네 같은 <없어 보이는>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두 배경을 남녀 대학생 각각 5명을 그룹으로 해서 사진을 따로 보여줍니다. 즉, 5명에게는 ‘있어 보이는 배경’사진을 보여주고, 다른 5명에게는 ‘없어 보이는’ 배경을 보여준 것이지요. 그런 다음 두 그룹에게 선생님이 내는 문제에 대답하는 이 어린이의 비디오를 따로 보여줬습니다. 이 아이는 70~80%의 답을 맞췄습니다.

‘있어 보이는’ 사진과 비디오를 본 대학생들에게 소감을 물었습니다. “부유하게 자라서 그런지 자신감이 있어 보였습니다.” “평소에 열심히 공부한 흔적이 보였습니다.”등으로 모두가 긍정적으로 답하더군요. 반면에 ‘없어 보이는’ 사진과 비디오를 본 학생들은 “집안이 어려워서 그런지 자신이 없어 보였습니다.” “소심하고 기가 죽은 모습이었습니다.”라고 모두들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습니다. 답은 두 경우 모두 똑 같이 맞췄는데도 말이지요.

위 두 실험은 EBS의 ‘인간의 두 얼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내용이다.

거리 인터뷰를 해보지 않아도 사람들은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말하고 사업에도 귀천이 없다고들 말합니다. 사람들은 <상황1>을 실험하기 전에 이러한 상황설정을 미리 설명하고, 거리 인터뷰를 해보면 모두가 “차별 없이 답해 줄 것이다.”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직업도 사업도 귀천이 있는 듯 보입니다. 이성을 소개할 때, 동일한 사람에게 임의로 두 가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위장해서 소개해 보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겉으로 보기에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은 어딘가 귀해 보이는지 선뜻 응한 반면에, 그다지 귀하지 않은 직업을 가졌다고 하면 처음부터 거절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나는 온라인 상담자들의 나이와 학력수준을 비교적 쉽게 가늠해 냅니다. 누구도 자신의 나이나 학력을 먼저 얘기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십중팔구는 맞춥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동안 어떤 업종을 염두에 두고 있었나?”고 묻기만 하면 해답은 바로 나오지요.

커피숍, 아이스크림전문점, 제과점, 편의점, 와인 바, 스파게티전문점 등이 나오면 거의 대부분 ‘조금 있게 사는’ 30대 대졸여성이거나 30대 중반~40대 초반의 대졸남자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반면에 남성 미용실, 배달형 치킨전문점, 생맥주전문점, 삼겹살전문점, 감자탕전문점 등은 ‘조금 부족하게 갖고 있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지요. 일부러 알아보려고 ‘분석’이란 걸 해 본 것은 아닙니다. 30년 이상을 상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통계가 나오더군요.

왜 그럴까요? 세상에는 수만 가지 직업과 업종들이 많은데 하필이면 이 몇 가지 흔한 업종에 관심을 가질까?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그 하나는 ‘아는 만큼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전역장병 교육을 오래 한적이 있습니다. 그 때 장교들에게 전역해서 무슨 사업을 하고 싶은지 질문을 해보면 대부분 ‘비디오 가게’를 하겠다고 하더군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퇴근 후에 비디오만 봤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위 <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있어 보이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역시 과거에 명문여대를 나온 여성의 상담을 한적이 있습니다. 그 여성은 ‘죽어도’ 커피전문점을 하겠다고 하더군요. 이유를 물으니, 학교 앞에서 커피전문점 하면 선후배들한테 괜찮아 보이지 않겠느냐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가끔 친구들 불러서 얘기도 나누구요.” “그렇다고 제가 분식집을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러더군요.

대학을 다니면서 학교 근처의 커피전문점 주인이 우아해 보였을 것이고, 아파트 단지를 들어서면 빵집에서 풍겨 주는 빵의 향기 속에 사업하는 여성이 ‘있어 보였기 때문’임이 분명합니다.  같은 장사하는 사람인데 자장면 배달이 좀 늦으면 큰소리를 뻥뻥 치면서, 스파게티가 좀 늦게 나와도 점잖게 기다려 주는 여유와의 차이가 혹시 차별은 아닐까요?

<상황3>

또 다른 실험이 떠오릅니다. 미혼 여성 3명에게 히줄그레한 복장으로 걸어가는 30대 초반 남자와 넥타이를 말끔하게 하고 걸어가는 남자를 보게 합니다. 앞 남자는 옆건물 변호사라고 넌즈시 알려주고, 뒷 남자는 옆건물 보험회사 설계사라고 알려줍니다. 그랬더니 세 여자 모두 앞 남자가 “멋지다”고 말합니다. 두 남자는 동일한 남자인데도 말입니다.  이건 분명 직업이 여자들의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합니다. 

위에 언급한 상황실험에서 한 심리학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더군요. “차별 없이 대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여유를 갖고 사는 사람들”이라고…우리는 겉보기에 우아하고 있어 보이는 사업을 하려고 하는 것이 혹시 자신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드러낸 것은 아닐런지, 아니 너무 팍팍하게 살다보니 여유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