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포럼에 가입하실래요?

내 이름은 이형석. 요즘처럼 개명을 쉽게 하는 시대에 단 한 번도 개명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찬란한 그 이름 이형석이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내 이름은 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상당히 많은 동명이인이 SNS에 떴다.

인물사전에서 검색해 보면 2천년까지는 단지 3명 정도 출력된 것 같은데 지금은 의사, 정치인, 꼬마 연예인에서부터 상당수가 뜬다. SNS로 확대해 보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이형석이 줄줄이 나타난다. “뭘 자기이름으로 검색하고 난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북한 김정은이도 하루 중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자기이름으로 검색해 보는거라고 하지 않던가.^^ 

한번은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이형석들”에게 일제히 제안서를 보냈다. “이형석끼리 다 같이 한번 만나볼 생각이 있느냐?”고. 여러 명이 나온다고 하면 어떻게 불러야 할까? 번호로 불러야 할까? 아니면 예명으로 불러야 할까? 그도 아니면 특징으로 불러야 할까? 잠시 흥미로운 고민을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아무도 연락해 오지 않았다. 사실 나는 열 명만 넘으면 다 같이 함께 참여하는 비즈니스모델 하나를 만들고 싶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홍보효과가 클 것으로 생각해서다. 각각의 역량을 모으면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과거에 한동안 나는 이름을 갖고 놀았다. 전화번호부에서 이색적인 이름을 찾아보기도 하고, 희귀 성씨를 찾아보기도 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이름은 ‘여인숙’이다. 그리고 성씨가 특별한 경우는 귀화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릴 적 내가 좋아했던 여자의 이름은 이지희였다. 이미지도 글 솜씨도 ‘상상 속의 지희’를 닮았다. 그런데 나중에 실명이 따로 있음을 알았다. 그 이름은 ‘재순’이었다. 당시 재수를 한 학생들에게 재순이라고 놀렸던 때라 예명을 쓴 것으로 이해했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어느 해던가? 새해 첫 날, 공교롭게도 두 여대생에게서 비슷한 문자가 날아왔다. “올해부터 내 이름을 정민으로 불러 달라”는 것과 “내 이름은 잊고 차라리 꼴통으로 불러 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두 사람의 이름은 이정은과 임현정이다.

즉시 전화를 걸어 “예쁜 이름을 가졌는데 왜 그리 호들갑이냐?”고 했더니 너무 흔해서 싫다는 것이다. 언뜻 떠오른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을 들먹이며 정은이는 가까스로 달래긴 했지만 현정이는 짜증을 내면서 심통을 부렸다.

요즘 들어 이름에 콤플렉스를 느낀 사람들의 개명 움직임이 거세다. 어느 sns에서 가장 흔한 ‘김이박’ 세 성씨로 81년생 동명이인을 찾아봤더니 ‘현정’은 1,438명, ‘정은’이는 1,107명이었다. 단지 출생년도가 같은 세 성씨로만 찾아도 이 정도라면 흔한 이름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예전에 가장 많았던 동명이인은 이영자와 이영숙이 많았다. 이번에는 성까지 동일한 조건으로 81년생 이영숙을 찾아보니 240명이었고, 이금자는 9명에 불과했다. 세대에 따라 이름도 이렇게 차별대우를 받는 듯 하다.

과거 일본에서는 수년 전, 한 인기 여가수의 이름을 따서 한해에만 무려 2만 7천여명의 신생아가 그 여가수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한 적이 있다. 그 아이들이 크면 개명바람이 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만일 너무 흔해서 싫다면 실존이름이지만 흔하지 않은 이름 예컨대, 이남자, 이여자, 방귀녀, 강아지, 여인숙처럼 짓거나 차라리 ‘무명씨’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5천만 인구 중에는 어차피 동명이인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인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전두환씨도 그 시대에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였다. 그래도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르지 않았는가?

20대에는 삶이 하도 팍팍해서 잠시 내 이름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싶을 때가 있었다. 사회에서는 주석석(錫)을 쓰지만 호적에는 돌석(石)인데 여기에 형통할 형(亨)자니까 “돌이 형통해 지려면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서일까? 청년기에 돌(stone)에 경험을 새겨넣듯 오랜 고난의 계곡을 지나니 30대 중반 들어 서서히 안정을 찾기 시작했으니 이름 따라 잘 흘러왔다는 생각도 드는 요즘이다.

위의 두 친구에게는 흔한 이름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하나 주고 싶다. 이름이 흔하다고 콤플렉스를 느낄 것이 아니라 흔한 이름을 무기로 동명이인끼리 포럼을 하나 만들어 남들이 개명을 통해서라도 가입하고 싶을 만큼 세력을 키워보면 어떨까 싶다. 성공하면 동명이인 타운을 만들어 저~ 남해안 어느 아름다운 마을에 공동체로 모여 유유자적하며 살아도 멋진 인생이 아닐까?

이참에 이방인포럼 하나 만들어 봐?^^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