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필요해

강정숙 선생의 작품 '빨간우산'

오래 전 개그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던  ‘대화가 필요해’라는 코너가 있었다. 부모와 아들, 세 식구의 식사시간이 배경이었는데 각기 다른 사고방식과 가치관의 차이로 대화는 맥이 끊어져서 온화하고 행복해야 할 식사시간이 서먹함으로 시작해서 결론 없이 끝나는 참 삭막한 가정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다른 코너에 비해 꽤 오래 지속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의하는 시청자들이 많아서 일게다.

예전에 전화 안내를 해 주는 114에서 ‘가장 황당했던 고객 톱 5‘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중에 ‘대화가 필요한’ 사람들이 상위에 랭크됐다. 무작정 전화해서 상담원과 토론 하자고 하거나 사회에 대한 불만을 털어 놓으며 말을 이어가려는 고객들이다. 114는 이들을 황당 고객이라 했지만 이제는 황당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 일상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사실은 그러한 심정적 통화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데도 아직은 ‘황당한 사람’ 취급 받을까봐 자제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들에게는 대화가 너무나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사회가 첨단화되고 핵가족화 되면서 대화의 단절이 중요한 이슈로 등장한지도 오래됐다. 문명의 빠른 변화는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 대화의 주제를 바꾸어 놓았고, 치열한 삶을 이기기 위해 워크홀릭으로 살아가려니 가족간의 대화시간을 갖기도 쉽지 않다. ‘대화’란 놈은 안하면 안할수록 할 말이 없어지고, 하면 할수록 얘깃거리가 더 많아지는 이상한 습성을 지녔다. 오랫동안 안하면 더 많은 화젯거리가 있을 법도 한데 말이다.

이를 반영하듯 과거 미국에서도 ‘대화가 필요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전화서비스’가 틈새 비즈니스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유료통화임에도 이러한 전화욕구가 많았다는 점을 보면 유료수신으로 수익을 내는 ‘들어주는 전화서비스업’도 도입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멘토(Mentor)의 역할을 해줄만한 따뜻한 가슴을 가졌다면 한번 시도해 볼만하지 않을까 싶다.

대화의 단절로 인해 화목하지 못한 가정이 의외로 많다. 귀가하자마자 제 방에 쑥 들어가 버리는 아이가 있다면 이는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부모에게 자랑하거나 의논하고 싶은 것이 많을 텐데도 대화가 통하지 않아서 일게다. 가출 청소년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부모와 대화를 하고 싶은데도 섞일 수 없는 소위 ‘대화의 단절’때문이라고 한다.

나도 대화가 일종의 의무감처럼 느껴지는 자리가  있다.  그래서 어떤 자리에서는 평소에 안하는 긴장을 하게 되고, 단어 선택이나 어투에도 각별한 신경을 쓰곤 한다. 갭을 줄이기 위해 사전에 상대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도 하고 주변 얘기를 사전에 들어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부담 없고 부드럽게 이어지기란 쉽지 않다. 너무 배려한 나머지 잠시 대화가 중단되면  얼른 나서서 이어가려다 보면 너무 많은 얘기를 하게된다.  그래놓고  돌아오면서 후회한다.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