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쾌락을 위해 준비된 나의 고통

9호선 국회의사당역에 걸린 그림

20대에 국제회의 대행업(Professional Convention Organizer)을 하다 빚을 져서 압류를 당한 적이 있다. 보증금 5만원에 월세 5만원을 내며 어렵게 버티던 시절이었다. 울부짖는 우리 가족을 집행관 3명이 팽개치듯 밀쳐내며 ‘빨간 딱지’를 붙였다.

가재도구라고 해봐야 작은 TV와 책걸상이 고작이었는데 신발을 신고 들어와 이불을 짓밟으며 다 붙이고 나서는 박수를 치듯 손을 털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사라졌다. 며칠이 지났을까? 경매가 시작됐고 낙찰가는 고작 3만원. 당장 먹는데 필요한 식기와 가리는데 필요한 싸구려 옷 몇 벌, 그리고 책을 제외한 작은 소품까지도 다 가져 갔는데 7만원의 채무 가운데 3만원이 변제된 것이었다.

6개월이 지났다. 남은 4만원을 받기 위해 채권자가 또 다시 압류를 했다. 우리는 더 이상 집행관들을 붙들고 애원하거나 울지 않았다. 아니 그럴만한 기력도 없었다. 차라리 내 육신을 압류해 갔으면 이보다 더 허망하고 슬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집행관들과 입찰자들의 행동이 너무나 가혹해서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가누기 힘든 우리의 고통을 그들은 아주 태연하게 농담과 웃음을 섞어가며 게임처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고통은 너의 쾌락

그것은 분명 타인에게는 즐거움이었다. 신발을 신고 내 방에 들어서며 ‘집행자’의 쾌감을 느꼈을 것이고 울부짖는 아이들을 밀치면서 그들은 ‘승리자’의 기분을 만끽했을 것이다. 입찰자는 거의 공짜로 얻은 기분에 ‘포만감’을 느꼈을 것이고 이를 바라보던 채권자는 더 가혹하게 다루어 주기를 바라며 ‘권력자’입장에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나의 체험처럼 당사자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도 타인들은 이를 보고 하룻밤의 유흥거리로, 혹은 대리만족으로, 혹은 관음적이고 말초적인 흥밋거리로 삼는데 익숙하다. 다소 오래된 얘기지만 잊혀지지 않아서 다시 떠올려 본다.

지난 87년 11월 29일 미얀마 상공을 비행 중이던 KAL기 폭파사건 당시 사람들은 유족들의 아픔과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보다는 “비행기 타고 여행이나 다니는 부자들”이라며 입방아를 찧었고 93년 7월 26일, 목포공항의 아시아나 추락사건에서 긴급 구조되던 반라의 한 여인 사진이 신문에 실리자 이름과 사는 곳, 몸매 등에 더한 관심을 보였다. 일부 언론은 이러한 역행지각을 의식해서 문제의 사진을 싣거나 방송하지 않았지만 결혼한 30대 초반이며 강동구에 산다는 것까지 친절하게 알려주고 난 다음 일이다.

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당시에도 11일 이상 생존한 최명석, 유지환 등 두 젊은이는 두 청년의 고통을 상품가치로 계산한 방송사들의 연이은 출연요청에 곤욕을 치러야 했고 연예인 김현경과 황수정씨도 자신들의 의사나 고통과 무관하게 타인의 관음적 욕망을 채워주는 주는 촉매로 이용됐다.

어느 날,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잘나가던 한 중견기업 대표의 전화를 받았다. 그의 첫 마디는 “제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습니다.”였다.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회자되던 그였지만 실패 후 이전에 알고 지내던 여러 업계 지인들에게 전화를 했다가 ‘뚝’ 끊어 버리는 경험을 해 오던 차여서 얘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했다.

“옛날에는 감히 나한테 직접 전화도 못했던 사람들인데 비참합니다.” “한 때는 성공사례로 글을 썼던 사람까지도 이제는 실패사례로 글을 올리고 있으니 참담하고 억울하기도 합니다. 제가 실패한 이유를 잘 아는 사람인데도 말입니다.” 그의 하소연이 아직도 귀를 맴돈다.

요즘 기사들을 보면 가히 저질스럽고 엽기적인 글들이 재탕 삼탕으로 올라온다. ‘헉!’ ‘이럴수가!’ 이런 건 이제 장난수준. 인터넷 신문이야 클릭으로 먹고산다니까 그렇다 치지만 메이저신문에서도 요즘은 도찐개찐이다.

일일이 찾으려고 하지않고 그냥 한 페이지만 봐도 이렇다. 중요하지도 않은 실수로 여탕 들어간 남자 얘기는 신문마다 야하게 떠들어대지만 정작 중요한 사회적 이슈들은 뒷전으로 밀린다. 말초신경을 자극할만한 얘기만 탑으로 띄우고, 광고 많이 낼만한 기업소식은 특집으로 낸다. 뻔하게 광고인데도 우리는 기사로 읽어주는 인내와 배려로 하루를 산다.

어제는 정부를 마구 공격하던 사람들이 지원금 조금 받으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환호 일색이고,   장관 자리 하나 얻으려고 마누라 팔고 자식팔아 변명으로 일관하는 꼴들을 보면 한심하다 못해 역겹다.

그래도 이것이 인생인걸 어쩌랴.
고통을 함께 나누는 대한민국,
기회가 균등한 대한민국
패자부활전이 활성화되는 대한민국은 요원한 것일까?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