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과 위로, 그리고 이방인

위로에 점점 인색해져 가는 사회에서의 생존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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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에 사는 한 지인이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죽기 전에 가장 많이 하는 후회하는 일 다섯 가지’를 썼다. 그중 하나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대신 내 주위 사람들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 글에 댓글이 달렸다. “지금의 내 삶은 살고 싶은 내 삶인지, 보이고 싶은 삶인지 아리송~~~”이라고 썼다. 광주에 사는 지인이다. 우리는 살면서 남의 관심과 위로에 목말라한다.

나는 그 관심에 무관심해지려고 부단한 노력을 했다. 10대 때는 누나들에게 의지하는 내 모습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부산에서 서울로 무작정 가출을 했다. 새벽에 집을 나서기 전, 누나에게 편지를 남겼다. “누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동생으로 성공하고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 전에는 찾지 마세요.”라고.

그 의지하는 마음을 없애기까지는 너무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슬픈 일이나 힘든 일이 생기면 늘 가족이 생각났고, 당장 뛰어가 위로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내가 쓴 그 한 줄의 편지가 나를 다시 냉정을되찾게 해 주었다. 한 12년쯤 흐른 뒤에야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모든 일은 나로 인해 비롯된 일이다. 따라서 어떤 일이라도 전적으로 내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짧은 편지 한 줄이 내게 ‘책임’을 갖게 해줬다. 그때가 27살이다. 나는 여전히 ‘책임’을 가장 중히 여기는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책임감 없는 사람을 싫어한다.

SNS를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다. 뭔가 새로운 게 나오면 가장 먼저 해보는 소위 얼리어답터 기질이 있어서 일단 한번 해본다. 10여년 이상을 줄기차게 놀았다. 하지만 2~3년 전부터 사람들이 관심에 인색해진 느낌이 들었다. 예전처럼 그냥 축하해 주고, 공유해 주고, 위로의 글을 써주면 좋으련만 손가락에 기부스한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용자들 중에는 상처받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어떤 이는 “지 자랑거리나 올릴 줄 알지, 남에게는 관심도 없는 사람”이라거나, “댓글을 달아주면 최소한 품앗이라도 할 줄 알아야지” 등의 푸념이 많아졌다. 사람들의 마음이 변해가는 모습이 느낌으로 와 닿았다.

어릴적 우리는 친구를 만나려면 그네 집으로 뛰어가야 했다. 집밖에서 이름을 불러보고 안 나오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찾아가곤 했다. 전화가 생겼다. 이젠 뛰어가는 대신 전화를 했다. 그런데 삐삐가 등장했다. 무작정 전화기를 돌리는 것보다는 시간을 줄여줬다. 휴대폰이 나왔다. 이젠 문자로도 대화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다 SNS가 나왔다. 이제는 클릭 한번으로 관심을 나타낼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수 십분간 뛰어가서 관심을 보였던 시절에서 클릭 한번으로 관심을 나타낼 정도로 지금은 초시간으로도 충분히 소통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마저 인색해졌다. 거꾸로 생각하면 그만큼 사람들이 각박하게 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나는 SNS를 끊었다. 관심에 물들어가는 내가 되기 싫어서였다.

오래 전, 나는 스스로 위로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렇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20대 때는 하늘과 대화하며 마음을 달랬고, 30대에는 드라이브하면서 음악으로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지금은 글과 음악으로 마음을 달랜다. 스스로 위로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던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분노하거나 우울이 쌓일 것 같아서다.

얼마 전,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사실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지인이 제안했다가 시작단계에서 중단해 버려서 내친김에 시작한 것이다.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은근히 기대를 많이 했다. 게 중에는 도움을 많이 준 사람들도 적지 않아서 달려와 구독을 해 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오히려 공유하고, 축하도 해 줬지만 정작 기대한 사람들 중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심통이 나서 괜히 한 사람에게 서운함을 표했다. 그냥 그렇게 말해도 받아줄 사람이라 생각해서다. 물론 그 사람은 매우 바쁘게 산다. 그래서 이해한다. 그러면서도 괜히 한번 받아보고 싶었다. 전화가 걸려오고 이해를 구했다. 사실 그럴 사안도 아닌데 내가 쫀쫀하게 이런 사소한 일로 심통을 부리다니!

그렇게나 오랫동안 다져온 ‘관심의 무관심’을 이렇게 망가뜨리는 걸 보니 나도 여전히 관심을 받기를 기대하나보다. 그건 아닌데… 오늘다시 마음을 다잡고 이전처럼 혼자 위로하는 훈련을 다시 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주가 시작됐다. 우리는 이방인(Outsider)처럼 그렇게 산다.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