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설움

2014년 2월, 서울 석촌동의 단독주택 지하에 세 들어 살던 모녀 일가족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일이 있었다. 어머니와 두 딸이 한꺼번에 연탄불을 피워 자살한 가슴 아픈 사건이다. 60세인 어머니와 큰 딸(35세), 작은딸(32세)가 함께 간 것이다. 유서에는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집 주인에게 쓴 메모만 발견됐다.

한 탈북자와 아들이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심장 서울 봉천동에서 굶어 죽었다. 이들 모자는 작은 임대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시신이 발견되기 2개월 전, 통장에서 전 재산 3,858원을 인출했고 집안에 먹을 것이라고는 고춧가루 밖에 없었다.

더욱 가슴 아픈 일은 엄마가 먼저 죽고, 5살 난 아들이 5~7일 후 죽었다는 부검소견이다. 통상 엄마는 자살하려고 하면 어린 자식을 부등켜안고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엄마가 먼저 굶어 죽었기 때문에 혼자 남겨진 아들은 아무 손길도, 관심도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죽었을 것이다.

언급한 두 가정은 아마 아무도 돈을 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난. 사전적 의미로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한 상태’를 가난이라 한다. 사전이라서 좀 유연하게 표현했지만 ‘돈이 없어서 살기 팍팍한 상태’를 말한다. 즉, 돈이 부자와 가난한 자를 구분 짓는다. 돈이 행복을 담보해 주지는 않지만 가난이 불행을 가져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경남공고를 다니던 중학교 1년 선배와 부산 전포동 기찻길 아래 초라한 샛방에서 자취를 한 적이 있다. 새벽이면 화물기차가 두세차례 지나가다 보니 잠을 자기도 어려웠다. 추운 겨울, 우리는 연탄을 사기 위해 둘이 교대로 매일 연탄가게를 가야만 했다. 그래봐야 고작 두 장. 한쪽을 묶은 새끼줄로 구멍에 끼워 양손에 하나씩 들고 오는 식이다.

어느 날 그 옆집에 트럭에 가득 실은 연탄이 배달됐다. 배달원이 두 명이나 붙어서 집 안까지 들여다 주는데도 값은 우리보다 30~40원이나 쌌다. 우리는 낱개였고, 그 집은 차떼기여서 당연한 이치지만 그때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에게 더 비싸게 받다니… 옆집 아줌마에게 그 집에서 산 가격으로 10장만 주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다.

처음 창업 컨설팅업체를 설립하고 ‘사업정보’라는 잡지를 발행했다. 당시 구독자들이 구독료를 카드로 결재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카드사는 3곳. 수수료는 BC카드가 가장 비싸서 7%, 국민카드는 5%, 외환카드는 4%였다. 어떤 날은 3개 은행에 잔고가 몇 천원씩 밖에 남지 않아서 직원에게 세 군데를 돌아 찾아오라고 했다. 아무도 가지 않았다. 챙피하다고…결국 내가 직접 가서 찾아야 했다. 그래봐  1만원도 안 되는 금액이었지만 그게 필요했으니까.

하루는 영업차 외부를 나가야 하는데 이침 출근버스비도 없었다. 이웃집 세 군데를 돌며 1만원만 빌려달라고 했다. 모두 거절 당하고 네 번째 집에서 어렵게 빌려 출근했다. 그날은 이를 악물고 얼마나 걸었는지 저녁에 발이 퉁퉁부어 잠자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어느 정도 성공을 하고 난 후에는 돈을 빌릴 이유가 없어졌다. 그랬더니 거꾸로 돈을 빌려주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돈 필요하면 갖다 써요.”. 은행에서도 돈 쓸일 없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금액의 차이는 현격했다. 없을 때는 1만원 빌리기가 어려웠지만 어느 정도 이루고 나서는 1억원은 그리 어렵지 않게 빌려 주려고들 했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성공하고 싶다면 없다고 티내지 말자. 그럴수록 사람들은 너를 멀리 할지 모른다.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