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이름

◤“우리는 사랑하는 친구들에 의해서만 알려진다.”◥
오늘 건네받은 한 책자에서 발견한 문장인데 참 멋진 말이다.

‘친구’를 다시 생각해 봤다.

■ 며칠 전, 성인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 “친구가 5명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더니 30여명 중에 거의 1/3이 손을 들었다. 친구가 많은 사람이 부러워야 정상일텐데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건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 얼마 전,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대학과 미국 MIT 연구팀이 발표한 ‘친구’에 대한 논문이 먼저 떠올랐다. 동급생 84명을 대상으로 교차 조사한 결과, 서로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53%에 불과했다. 47%는 짝사랑인 셈인데 결론은 “우정은 쌍방향”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설문을 동급생이 아닌 ‘사회에서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대상을 바꾸면 그 비율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 문득 도강했던 영시산문 시간에 읽었던 Adams, Henry Brooks의 시가 다시 생각난다.

“친구 셋은 거의 불가능하다.(three are hardly possible.)
친구 둘은 너무 많다.(two are many)
친구 하나면 충분하다. (One friend in a lifetime is much,)“

■ 짧지 않은 인생을 사는 동안 친구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
상당한 친구들은 내 처지에 따라 순식간에 ‘남’으로 변했다.
어떠한 경우라도 나와 함께 해 준 ‘친구’를 세는데는 한 손이면 충분했다.

■그래서 친구를 다시 정의했다.
“친구란, 내가 힘들 때 가장먼저 전화를 걸고 싶은 사람이다”
거기에다 최근에 한 가지 더 추가했다
“마지막까지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이 친구다.”

나는 누구에게 이런 전화를 받게 될까?
그리고 나는 누구의 곁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을까?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