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과 희망, 그리고 행복

신이 불을 훔쳐간 인간에게 벌을 주기 위해 불행을 가득 채워 세상에 내려보낸 상자를 호기심 많은 판도라가 열어 버렸다. 그러나 상자 안에 가득 채워진 불행이 모두 세상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 중 신이 밑바닥에 숨겨두었던 희망도 같이 솟구쳐 나왔다. 신은 죄값에 대한 대가로 불행을 가득 넣었으나 일단의 가련한 인간들을 위해 희망을 살짝 끼워 넣어두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행복을 느낄 때는 저 밑바닥에 있는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행복할 때는 다음을 생각하는 지혜도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불행할 때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하며 희망과 친구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 그렇다고 희망이 성큼 찾아주지는 않는다. 불행의 씨앗이 희망보다 훨씬 양이 많기 때문이다.

소중한 친구가 늘 함께 해줄 때는 그 친구의 귀함을 모르고 살아가지만 친구가 떠나고 나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소중함이 새삼 크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연인이 극진한 사랑으로 나를 안아 줄때는 그 포근함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떠나고 나면 무감각했던 마음이 이내 사무친 그리움으로 늘 울적해 한다.

사업이 날로 번창할 때 기업은 다음의 희망을 위하여 예비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 자체로도 충분한 포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이 기울고 나서야 다시 희망을 찾아 야단법석을 떤다. 하지만 그 땐 상당한 불행을 이겨내야만 다시 희망과 마주앉을 수 있다. 실제로 나를 찾는 사람들은 여유 있거나 잘 나갈 때 찾아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 경영개선이 화급한 상황이거나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찾아온다.

컨설팅은 자원봉사가 아니기 때문에 절박한 상황을 알면서도 외면해야만 할 때는 아픔이 꽤 오래 남는다.

히로시마 원폭피해자를 위한 위령비

우리가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이는 필시 희망이라는 행복이 함께했을 때 이를 경시하거나 느낌 없이 지나쳤기 때문에 온 벌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가끔 든다. 원하는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을 때,이를 불행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이혼한 사람에게 역시 불행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혹시 전자는 희망이 보일 때 최선을 다하지 못했기에,그리고 후자는 가족구성원이 모두 함께할 때 소홀히해서 나온 산출물이 아닌가싶기도 하다.

다소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희망을 잉태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산고라고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 그럴 수만 있다면 그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희망과 함께 행복을 만끽할 때, 불행을 막아낼 자원을 비축해 두는 지혜가 더욱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