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Mind wandering)이 꼭 필요한 이유

가끔 친구들에게 문자가 온다. “뭐하냐?”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때마다 “멍청하게 뭔가를 응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걸 두고 유식하게 말하면 “두서없는 몽상(Mind-wandering)”이라 한다. 뭘 보고 있긴 한데 실제로는 뭘 생각하면서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응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각성과 꿈의 중간정도 정신이라 이해하면 된다.

인간이 두서없는 몽상에 잠겨있는 시간은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에 이른다고 한다. 보통 잠을 8시간 잔다고 가정하면 그 중 꿈꾸는 시간은 2년. 그리고 깨어있는 시간은 16시간이다. 이 가운데 절반정도니까 결국 8시간은 몽상하고 사는 셈이다.

그런데 보통 몽상하고 있으면 “일 안하고 뭐해!” 이런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 시간은 인간에게 굉장히 긴요한 시간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때 창의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어떤 시인은 이러한 시간을 “정신의 사하라 사막”이라고도 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몽상이 “정신의 창문이다”라고 정의한 경우도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 상태를 게으른 습관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프로이트도 이 상태(백일몽)을 “유치한 생각”의 한 예로 간주했다. 생산적이지 않고 문제를 연기하는 자세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신경과학은 이 상태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2010년 하버드 대학의 연구팀이 “Science”에 게재한 논문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연구팀은 “iPhone”용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자원봉사자 2,250명에게 임의의 간격으로 연락하여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행복한지”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두서없는 몽상”을 하고 있다는 응답이 전체의 46.9%에 달했다. 실제로 그들이 두서없는 몽상을 하지 않았을 때는 섹스를 하고 있을 때 뿐이었다.

두서없는 몽상(Mind-wandering) 상태에서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2009년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의 카리나 크리스토프와 캘리포니아 대학 산타 바바라 조나단이 이끄는 연구팀은 “경험 샘플링 방법”을 이용한 실험을 했다. FMRI(기능적 자기공명 영상) 장비에 넣어 뇌의 상태를 조사하는 방법이다.

“두서없는 몽상에 잠기는 상태”는 의외로 쉽게 만들 수 있다. 귀찮은 작업을 많이하게 하면 피험자는 몇 초내에 이 상태에 들어가기 때문. 예를들면 “전쟁과 평화”와 같은 지루한 장을 읽도록 하면 된다. 이 실험방법에서 얻을 수 있는 흥미로운 점은 “지루한 일을 시키거나 하게되면 쉽게 몽상상태로 간다는 점이다.

여하튼 몽상 상태에서도 대사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예전부터 익히 알려져 왔다. 우리 뇌는 몸 전체의 2% 밖에 안되지만 몽상상태라도 에너지는 전체의 20%를 소비할 정도로 활발하게 움직인다. 뇌파 발명가인 한스버거(Hans Berger)도 뇌는 아무 생각을 안해도 계속 바쁘게 활동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발표한 바 있다. 소위 default mode network 이론이다.

연구팀은 몽상 상태에 있을 때 두뇌가 하는 일련의 활동을 더 자세하게 분석해 봤다. 그런데 몽상상태라도 서로 대립하고 있는 뇌의 두 가지 영역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여기서 두가지 영역이란 “실행 네트워크” 즉,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때와 같은 의식적인 네트워크와 “기본 네트워크” 즉, 각성도가 낮고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을 때 등을 말한다.

언뜻 생각하면 몽상상태일 경우, 기본 네트워크 정도만 가동되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도 실행 네트워크가 동시에 가동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몽상=무심”이라고들 생각해 왔기 때문에 이 결과의 의미는 상당히 크다.

또 다른 연구를 보자. 오스트리아 연구진은 2011년 10월, ‘PLoS ONE’에 이와 관련된 연구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연구팀은 “반응 각성증후군”(unresponsive wakefulness syndrome : UWS) 환자 17명과 “최소 의식 상태” 즉, 통증이나 불편 등 최소한의 의식 경험에도 액세스할 수 없는 상태 환자 8명, 그리고 건강한 피험자 25명을 조사, 의식 수준의 차이에 따른 뇌 차이를 밝혀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차이점은 가장 반응이 부족한 상태의 환자 즉, 실행 네트워크를 가동시키지 못하고, 백일몽 루프를 벗어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환자들조차 기본네트워크를 비활성화시키는 능력이 손실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태의 환자들은 알츠하이머 질환이나 정신분열증 환자 등이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실험은 위의 오스트리아 스쿨러 교수팀의 연구다. 이 연구는 몽상 상태에서 창의력이 있을까?에 대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 실험에서 몽상을 2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하나는 타인을 의식하지 못하고 몽상에 빠져있는 것을 본인조차 눈치 채지 못한 유형상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몽상에 빠져있는지를 자각할 만한 수준의 몽상이다.

그런데 신기한 점이 발견됐다. 자신이 자각하지 못하는 수준의 몽상을 하는 사람이 자각할만한 수준의 몽상을 하는 사람보다 창의성과 독창성이 높았다는 점이다. 다만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몽상가들은 순간적일지라도 메타 인식(meta-awareness)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창의력을 실행으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태기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에 관심이 없어져서 시들해지거나 게으른 상태가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실험들에서 권태조차도 인식의 선물이라고 결론냈다.  권태기에 몽상시간이 길다는 것일 뿐 다른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한동안 권태기 같았는데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