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을 향해 가는 것이 인생이지

나만한 나이의 다크써클 짙은 여성들이 1층에서 잔뜩 엘리베이터 를 기다리더니 모두 약속이나 한듯 4층에서 내린다. 다 같이 내리는게 인상적이라 그 층에 뭐가 있나 봤더니 ‘한국방송작가협회’ 간판이 정면에 보인다. 바로 옆에 면접대기장소라고 적힌 a4용지가 붙여있는걸 보니 그날이 무슨 면접날이었나보다.

묘하게 심장이 뛴다. 방송. 작가.. 모두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 단어인가? 같이 탄 7명중 하나는 제대로 성공할까? 스타작가가 될까? 스테디셀러를 만들까? 내가 저 면접을 봤어야하지 않을까? 내가 방송작가가 되야되지 않을까? 혜성같이 나타난….예상치못한 다크호스.. 미술에서 심리상담을 지나 방송계로… 짧은 찰나에 빠르게 상상이 진행된다. 웃음이 난다. 홀로 남은 엘레베이터를 타고 3배쯤 더 올라간 후에 11층 현실에 내린다.

글을 쓰는 삶


언제부터 그것이 나를 뜨겁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불을 지핀건 미국에서 ‘섹스앤더시티’를 보면서 부터였다. 글과 돈, 컬럼과 패션이 연결되는 장면은 나를 크게 흥분시켰다. 지적허영과 미적허영이 적절하게 채워진 삶. 그래, 유명해진다면 아티스트가 아니라 연예인이 아니라 작가로 유명해지고 싶다. 큰 돈을 번다면 대기업 임원이 아니라, 내 센터를 가진 심리상담사가 아니라 작가로 벌고싶다.

아빠가 30년 교수생활을 정년 은퇴한 후, 첫 학기 만풀 아카데미를 시작하며 이런말을 했다. “내가 여기서 이 수업을 하기 위해 30년간 고대에서 연습하다 왔습니다. 이번학기 수업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노교수의 지긋한 농담에 모두가 빵터졌지만 나는 그 말이 농담이 아니란걸 알고 있었다. 왜냐면 나 역시 글을 쓰는 그 순간 만큼은 10년전까지 미술을 한것도, 지금의 많은 심리상담 이론과 사례들도, 여태껏 내가 만난 소중한 사람들도, 가족도, 남편도 모두 글감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롱한 글 하나 남기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는 순간이다. 아빠에게 매 강의도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글을 쓰는 일상의 중요함에 대해 일깨워주는 스승들을 늘 만난다. 


그것이 책이라는 자산이 된다고도 말하고, 제3의 눈을 갖게 해준다고도 말하고, 베스트 프렌드가 생기는 것이라고도 하며 얼마나 패셔너블한 삶인지 일깨워주는 사람도 있었다. 11층에서 내린날 만난 분은 글을 씀으로써 생각이 짧아지고, 사고의 회로가 심플해진다고 말했다. 하긴, 내 생각을 내 눈으로 볼수 있다는 것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다.

내가 거리낌없이 나아가는 부분이 있다면, 내가 이유없이 허물어지는 부분도있다. 삶이 인과응보같다가도 아무런 법칙도 룰도 없음을 느끼게 된다. 어떤 일에 시작과 결론이 있다는 명제자체가 종종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너를 사랑하지만 너를 상관하지 않고 많은 순간을 살아가는 나를 발견한다.

나에게 글이란 이 널뛰는 두 마음을 판단없이 병렬시켜주던 다정한 도구였다. 내 부모조차 피곤해하던 부분이었다. 어떤 친구는 내가 변덕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글의 “괜찮다”는 속성 때문인지 정작 나는 예전보다 너그러워진 느낌이다.

한국방송작가협회를 마주친 그날 볼일을 마치고 사무실로 가는 버스안에서 내내 글을 쓰는 삶에 대해 아주 사적인 생각들을 멈출수가 없었다. 물론 4층의 협회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11층에서 받은 의미있는 피드백때문이었다.

글을 쓰는 삶이고 싶다. 아니, 사실 나는 이미 글을 쓰는 삶을 살고있다. 그리고 그것이 주는 안도감은 어마어마하다. 아빠가 고작 스무명 남짓이 앉아있는 외부 강의 한 학기를 위해 본인은 30년간 고대에서 심리학강의를 연습했다고 말하는 것 처럼, 나도 지금 쓰고있는 이 짧은 글 하나, 하나를 위해 내 인생을 연습해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11층

이 글은 심리상담사 한혜연 님이 쓴 ‘상담후기’다.  참고로 #11층은 내 사무실이다.  페이스북에 올렸길래 살짝 업어왔다. 그녀는 유명 예고,대를 거쳐 순수미술로 해외에서 석사를 하고, 다시 고대에서 상담심리학 석사를 했다.  즉, 20여년을 공부한 분야를 뒤로하고 새로운 업에 도전해 성공한 스페럴리스트다. 이 글을 소개한 이유는 우리의 인생은 늘 ‘완성’을 향해 가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글쓰기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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