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내 첫사랑과 닮았습니다.

이성 간에 사귀다 보면 남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때가 가끔 있을 듯 하다. “당신은 내 첫사랑과 너무 닮았습니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어릴적에 한 두 번 써 먹었던 말이다. 그런데 여성 입장에서는 그 말이 짜증나고 기분사납다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법도 하다. 특별한 표현을 듣고 싶은데 아주 흔한 얘기인데다 그것도 다른 사람을 빗대서 표현하니까 기분이 썩 좋을 것 같진 않다.

비록 고전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말에는 이런 뜻이 숨어있다. 남자는 첫사랑을 가장 애틋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첫사랑 이상으로 좋은 느낌을 갖는 경우도 흔치 않다. 따라서 첫사랑을 닮았다는 의미는 그만큼 당신이 좋다는 뜻을 전하고 싶은 대표문장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하는 남자는 첫사랑과 헤어진 후, 다시는 첫사랑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왜냐하면 늘 좋은 이미지를 가진 첫사랑을 다시 만나면 그 환상이 대부분 깨지기 때문이다. 첫사랑의 깨끗한 얼굴과 순수함은 늘 그 당시 시간에 멈춰있기 때문에 수년, 혹은 수 십년이 지나서 다시 만났을 땐 이미 그 순수성을 잃고 있는 경우가 허다해서다.

어쨌거나 첫사랑을 닮았다는 얘기는 짜증날만큼 기분 나쁜 얘기는 아닌 것은 확실하다. 적당히 다른 표현을 찾기가 어려워서 일수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연애경험이 많지 않아서 다른 표현을 모르는 것일테니 그만큼 여전히 순수한 남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창업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어릴적 파괴공학과 해양학 중 택일하고 싶었다. 파괴공학은 우리나라의 한정된 땅 아래서 갈수록 고층빌딩은 들어설 것이고 다시 재건축하는 일은 다반사일테니 파괴공학은 필수적인 유망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해양학은 삼면이 바다이면서도 우리는 바다를 제대로 이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특히 해수를 이용한 에너지 개발과 해수의 자원화에 대해 연구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파괴공학은 한국의 대학에는 없었고 당시 영국의 회사가 독점하다시피 하는 분야였다. 그것도 가족기업이…노하우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다. 해양학은 당시 서울대와 충남대에만 있었는데 서울대는 실력이 달렸고, 충남대는 지방이라 사정상 내려갈 수가 없었다.

지금도 이 분야는 여전히 관심이 많다. 첫사랑이 이루지 못했기에 더욱 아름답게 남아있듯이 해양학과 파괴공학도 이루지 못했기에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물론 도전하겠다는 것과는 별개다.

상담을 하다보면 누구에게나 하나쯤 해보고 싶었던 업종이 있다. 그래서 아무리 다른 업종을 얘기해 줘도 한때의 그 업종에 미련을 떨치지 못해 늘 염두에 두고 사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이들 가운데 직접 도전해 봤다면 아마 크게 실망했거나 아예 그런 꿈을 잊고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결론은 이렇다. 이루지 못한 즉, 도전하지 못한 이유 때문에 늘 가슴 한 켠에 아쉬움을 담고 살아가느니 차라리 약간의 손실을 각오하고라도 도전했더라면 그런 아쉬움은 덜할 것이다. 창업은 도전의 역사다. 사업 성패를 떠나 더 크게 보면 인생에서 후회 없이 사는 방법의 하나라고 보기 때문이다.

미련이 남아 있다는 것은 현실에 최선을 다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꾸 미련과 현실이 비교되기 때문이다. 첫사랑과 배우자를 비교하면 당연히 첫사랑이 판정승일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배우자에게 올인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닐까?

사업에서 성공도 중요하지만 브로드한 개념으로 보면 인생에서도 후회가 없는 것이 좋으므로 일단 도전해 보자. 늘 가슴에 품고 미련을 갖고 사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래서 도전은 늘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가슴이 느끼는대로 가는 것이 도전일테니까…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