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 지불시장 비즈니스모델

동서독 통합으로 세상이 시끄럽던 1990년, 대전에서 올라왔다는 한 청년이 찾아왔다. 생활정보지 하나를 창간했는데 정보를 제휴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는 유럽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청년으로 함께 공부하던 세 친구와 함께 무가지(無價紙)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니, 신문을 공짜로 배포한다고?” 당시에 신문은 당연히 돈 주고 구독해야 한다는 관념이 박혀있던 때라 얼른 이해되지 않아서 되묻자 그는 “유럽에 분류광고지(classified AD)가 있는데 이 비즈니스모델을 미러링(mirroring)한 생활정보지”라며 국내 안착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 청년들이 창업한 기업이 바로 국내 최초의 생활정보지 ‘교차로’다.

언급한 ‘분류광고지(classified AD)’는 그림이나 로고가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텍스트 광고를 모집, 학원, 매물 등으로 카테고리를 분류해서 광고를 싣는 정보지를 말한다. 과거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일간지에서 볼 수 있었던 소위 ‘줄광고’를 무료화한 광고전문지인 셈이다. 당시 필자는 PC통신에 유료 창업정보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던 터라 무료로 정보를 배포한다는 말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이후 분류광고지 모델은 199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업가 ‘크레이그 뉴마크(Craig Newmark)’에 의해 온라인 플랫폼(Craigslist)으로 발전한다.

‘교차로’와 같은 사업을 ‘제3자 지불시장 모델’로 정의할 수 있다. 즉, 서비스 이용자가 직접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제3자(3rd party)가 소비자의 대가를 대신 지불해 주는 비즈니스모델을 말한다.

Fake Classified Ad, newspaper, business concept.

다음 사례를 보자. 일본 도쿄대 앞에는 이용자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커피숍이 하나 있다. 커피를 마시거나 스터디를 해도 모두 무료다. 다만 제공하는 대상은 동경대학생으로 제한된다. 운영비와 인건비 등은 대기업이 후원해 주는 전형적인 제3자 지불시장 모델이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복사기를 무료로 제공해 주는 모델(Tadakopi)도 있다. 이 복사기로 인쇄한 용지도 모두 무료다. 하지만 한쪽 면에는 기업광고가 인쇄되어 있다. 이 아이디어는 호주에서 시작돼,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도입된 바 있다. 유사한 아이디어로 창업한 일본의 ‘에코풀(Ecoful)’도 인기를 얻고 있다. 홀더용 노트종이(loose-left paper)를 무료로 제공한다. B5 사이즈 기준으로 회당 16매까지 제공하되, 하단에 기업의 박스광고가 인쇄되어 있다.

언급한 서비스모델들은 지원금이나 광고로 유지되며 주로 명문대를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다. 고급두뇌를 유치하고 더불어 이미지 제고를 위한 프로모션 효과를 얻고자 함이다.

그렇다면 제3자인 기업들은 왜 이렇듯 무료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그 하나는 대상고객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인지적 편안함과 친숙함을 느끼게 되는 ‘자이온스(Zajonc)효과’다. 다른 하나는 ‘반보성((返報性)의 원리’로 사람은 누구나 은혜를 입으면 보답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브랜드에 대한 장기기억(long-term memory)효과까지 덤으로 얻게 된다.

언급한 효과들은 고도의 심리적 홍보전략의 일환으로 제3자 지불시장모델에 참여하는 기업도 있지만 직접적인 홍보효과를 내기 위한 방법으로도 활용된다. 지난해 한시적으로 도쿄 일부지역에서 시행된 ‘0원 택시’도 ‘제3자 지불시장’ 기반, 마케팅 모델의 하나로 꼽힌다. 승객은 무료로 이용하되 요금은 택시에 광고를 입힌 스폰서 기업이 부담하는 구조다. 이 택시를 이용하려면 최근 론칭(launching)한 차량공유 플랫폼의 앱(MOV)을 다운 받아야 한다. 금번 행사의 1차 스폰서인 닛신식품 측은 “일반 교통광고에 비해 결코 높은 금액이 아니다”며 간헐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따라서 ‘0원 택시’ 모델은 스폰서 기업이 자연스럽게 두 개로 늘어난다. 1차 스폰서인 닛산식품이 택시요금을 부담하고, 2차 스폰서인 앱(MOV)사업자가 다운로드 수 만큼 리워드(reward)하는 구조여서다.

그렇다면 ‘제3자 지불시장 모델’은 지원금이나 마케팅 수단으로만 한정된 모델일까? 그렇지 않다. 일본에 ‘무료 옷입기 교실’이 있다. 이용자 체형과 기호에 맞는 코디네이션을 지도해 주고, 그에 맞는 의상을 하루 동안 입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의류는 모두 기업이 제공하며, 이용자가 구매했을 때 보상해 주는 방법이다. 화장품 샘플제공업도 같은 맥락이다. 여러 브랜드의 샘플을 무료로 제공하고, 실 구매에 따른 수수료를 받는 모델이다. 변형된 모델이지만 남녀 간 만남을 콘셉트로 한 ‘합석주점’도 인기다. 마음에 드는 이성과 합석하게 되면 그 비용은 남성이 부담하는 구조다.

국내 일부 프랜차이즈 컨설팅 업체들이 무료특강을 자주 여는 것을 볼 수 있다. 민간 사업자가 공간대여와 강사비 등의 부담이 있음에도 무료로 투입하는 이유는 특강 중간에 가맹본부들에게 사업설명회 기회를 주고 대가를 받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가맹계약이 성사되면 추가 수수료를 받기도 한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부 대학들이 해외 유학생 유치를 위한 ‘해외학교’ 운영을 일부 지원하는 비즈니스모델도 있다. 현지에서 대학교육에 필요한 기본적인 교육사업을 하되, 운영비의 일부를 한국의 대학에서 지원한다. 수강생 가운데 유학을 원하면 지원대학으로 주선하는 구조다.

민간방송의 무료시청에서 쿠폰 플랫폼, 메신저의 국제전화 무료, 편의점에서의 무료 빨래방 등 ‘제3자 지불시장 비즈니스모델’은 다양한 방법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 웹(web)의 등장으로 익숙해진 무료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붙잡아 새로운 사회혁신 모델로 접근하려는 시도다. 구조적으로 제3자 지불시장 모델은 사회참여형 모델이어서 큰 돈을 벌기는 어렵지만 수익모델을 투트랙으로 가져간다면 보람과 이익을 동시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형석(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경영학박사)

이 글은 시사저널에 기고한 원고입니다. http://기사 직접보기 :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80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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