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역할을 찾아가는 한 여자의 쫄깃한 이야기(2)

이 글은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길을 찾아낸 컴테라피스트(Comm-therapist) 한혜연 님의 자전적 에세입니다. 오랫동안 배워온 Academic career를 뒤로하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social role(캐릭터)을 디자인한 스토리가 감칠맛나게 전개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설계하지 못했거나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은 분들에게 정향(定向)설계에 도움이 되리라 믿어 여기 공개합니다. 한혜연님과 직접 상담을 원하시면 이메일(heyeon.han@gmail.com)로 연락 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컴테라피스트는 대화를 통해 감정을 치유하는 전문가로 국내 1호입니다. -이방인

일일복용

몇 년 전까지 한 번씩 메일을 주고받던 폴란드계 독일인 친구 아리엠, 자기이름의 스펠링이 어렵다며 R-E-M으로 부르면 된다고 했던 매우 조용했던 시나리오 작가가 있었다. 한번은 그와 그의 아내가 집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큰 집에 이상할 만큼 가구가 없었는데 내가 도착하자 그가 짧게 집 투어를 시켜줬다. 그 집의 매우 인상적이었던 점은 화장실, 부엌, 마루 곳곳에, 발코니며 신발장에까지 노트와 펜, 스케치북이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가구가 없으니까 그것들이 다 바닥에 대본 쌓여있듯이 놓여 있었다.

몇 장 들춰보면 빽빽이 폴란드말, 영어, 그림, 오선지등으로 차있었다. 내가 아리엠한테 네가 쓰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나도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미술 전공했어.”라고 하자 아리엠은 “얼마나 자주 그리는데?” 라고 물었다. “글쎄, 기분 내킬 때 여기저기 끄적끄적 거리는거지 뭐. 언젠간 개인전도 하고 싶은데 막연한 꿈이야.” 라고 대답하자 그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 가장 쉬운 건 안 그리는 것이고 가장 어려운 것은 손에 붓을 드는 거야. 진심으로 꿈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매일 조금이라도 하는 게 좋아.

오늘부터.” 하면서 종이 한 장을 내밀었었다. 그때부터 나는 뭐라도 매일 그리려고 했던 것 같다. 대단히 의지가 필요한 일이었고 자주 자신에게 실망스러워 지는 경험이었다. 한 번씩 그에게 메일을 보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늘 답 메일 끝에 Give it a daily dose of Hane to the world!(세상에 한혜연이라는 이름으로 일일복용 해주는 거 잊지마!)라고 써주었다.

어떤 일이든 매일 매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분명히 오랫동안 좋아하는 일이었음에도 꾸준히 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이 세상에 나의 이름으로 일일복용을 해주라는 아리엠의 시적인 표현은 그 말 자체로 처져있는 나를 한번 씩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아티스트로써 꿈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드로잉 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현상은 혼란스러웠다.

source : https://www.picturecorrect.com/tips/beginner-tips-for-shooting-action-photography/

그러던 와중에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매일 조금씩 하라고 했던 ‘일일복용’의 다른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 것은 내가 열정을 가지고 있는 일에 대한 책임감이나 의무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힘든 줄 모르고 매일 하던 일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데에 그 의미가 있었다. 하찮게 여기던 일이라도 어떤 일을 내가 매일 해 오고 있다면 그것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 내가 매일 하고 있던 일이 뭐였을까? 당시의 나는 매일 출근해서 오전 중에 페이스북에 글을 쓰고, 매일 밤 자기 전에 유튜브로 미국 데일리 토크쇼 4개를 보고 중요한 부분을 잘라 스크랩 하고 있었다. 순전히 오락적인 취미로 시작했지만 그 두 가지 습관은 이미 내게는 일일복용 이었다.

의식하지 않고 했던 행동이었지만 ‘SNS’와 ‘토크쇼’라는 매체는 이미 사람을 좋아하고, 소통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주목받는 기분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을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 때의 글과 동영상 자료가 계기가 되어 후에 나는 심리상담을 방송이나 콘서트, 출판과 독특하게 연결하는 컨텐츠를 만들게 되었다. 내 전공이라서, 혹은 직업과 연결되는 것이라는 이유로 만약 매일 심리학서적을 조금씩 읽어야 한다고 스스로 푸쉬했다면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나는 무엇을 매일하고 있는가?
어떤 일로 이미 세상에 일일복용 하고 있는가?
막연한 꿈꾸기에서 벗어나 실제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명확하게 알아가려면 그것부터 알아야 한다.

<계속>

제1편은 여기에 http://www.leebangin.com/%EC%BB%B4%ED%85%8C%EB%9D%BC%ED%94%BC%EC%8A%A4%ED%8A%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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