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 커피, 코피

글의 제목 즉, 카피를 잘 잡아서 주목을 받았던 책이 있다. “대한민국에는 성공할 자유가 있다”라는 창업에세이인데 목차만 보고도 7백여 명이 사전 구입신청을 했고, 교보문고에서는 ‘저자와의 대화’에 초청받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출간 보름 만에 출판사 대표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제대로 빛을 보지는 못해 아쉬웠지만 카피의 중요성을 새삼 각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 책의 카피 일부를 소개하면 ‘창업에서 이 남자가 살아남는 법’ ‘1040 차차차(差差差)’ ‘심심(心心) 푸리(free)’ ‘섹스샵과 토네이도’ ‘무(無)에서 생각하라’ ‘돈없이 돈버는 법 춤춤춤’ ‘권리금 바이러스의 공포’ ‘자존심이 센 분들에게’ ‘가늘고 길게 산다는 것’ ‘미모와 추모사이’ ‘조기교육의 진원지 대치동을 가다’ ‘유행, 그 다음 계획이 있는가?’ ’인터넷 그 다음세상‘ 등이다.

카피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벌었던 때도 있었다. 지난 90년대 중반, PC통신을 통해 <유망사업정보>를 서비스할 때다. 당시에는 글을 읽는 동안 분당 5백원의 이용료를 받았던 시기인데 일주일에 두세 꼭지의 글만 써서 올려도 월평균 3천여만 원을 벌 정도로 인기칼럼이었다. 지금은 이런 글들이 무료로 이렇게 올려도 고맙다는 말조차 듣기 어려우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최근 ‘이방인’에 올린 글 하나로도 카피의 중요성은 실감나게 확인됐다. 똑 같은 글에 제목을 “그 사람 너무 잘났어”라고 했더니 불과 사흘만에 122회 클릭되었다. 하지만 이 제목을 다시 “인문학의 귀환”으로 바꿨더니 일주일 후에도 10여회의 클릭밖에 더 오르지 않았다. ‘이방인 칼럼’의 우측 상단에 있는 아이콘 <열람>을 클릭하면 클릭이 많은 순서대로 정렬되는데 ‘을왕리 7시 30분’은 무려 1,064회나 클릭했다.

그동안 ‘폼 잡고 예의 차리던’ 중앙일간지들도 이젠 카피수준이 ‘선데이 서울’에 버금가게 변했다. 지난 90년대 후반에 수차례 신문사에 의견을 주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더니 요즘에는 심하다 할 정도로 말초적이다.

<중앙일보 4월 29일자>에서 몇 개의 카피를 모아봤다.

원제 :돈주고 음주운전 무마하려던 30대 입건
카피 :음주운전 딱 걸리자 거액 □□□만원 찔렀는데…

원제: “인파에 야구장 입구 막혀 담 넘어가 중계”
부제: 유수호 아나운서 장효조 엄마에 혼쭐난 사연

원제:아내의 유혹’으로 국민 오빠 등극
부제:”이혼한지 5년, 띠동갑 넘는 여친 있지만…“

원제:언어가 힘이다 <7> 일본식 한자어
부제:뗑깡, 축제, 똔똔, 십팔번…우리말로 바꾸면?

<같은날 조선일보>에도 다음과 같이 실렸다.

원제 :전남편과 찍은 브루니 사진 도둑맞아
부제:브루니, 전남편과 찍은 ‘은밀한 사진’ 행방불명

원제:PD수첩, ‘광우병 번역 왜곡’ 다시 옹호
부제:’MBC 하려는 말은…’ PD수첩, ‘1년후’ 방송보니

<중앙일보 5월 21일자>에도 카피경쟁은 다르지 않았다.

원제 : ‘이기적 몸매’ 스포츠선수는 김연아
부제 : ‘이기적 몸매’ 스포츠 선수는 역시 그녀

원제 : 교통사고 사망비율이 높은 10개국
부제 : 한국 교통사고 사망비율 6위, 1위는?

5월 21일자, <조선일보>에서도

원제 : 결혼식장이 식당으로 전락
부제 : 결혼식서 식권대신 ‘이것’ 돌리니 환호

조선일보 6월 12일자에 원제에는 “함소원, 대만스타 증소종과 ‘열애’…파파라치에 덜미”인데 부제로 단 카피는 “함소원, 대만 연하스타와 열애?….‘허리에 손’ 포착”이고, 같은 날 중앙일보는 “여성로커 도원경 컴백”으로 해도 좋을 기사를 “여성 로커 도원경, ‘농염한 섹시미’로 돌아왔다.”로 올려놨다.

6월 17일일에는 “지난 16일 오후 4시50분께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팔당호 광동교 300m 하류에서 조모(36.여) 씨가 포대 속에 담겨 숨져 있는 것을 주변을 순찰하던 팔당호수질개선본부 직원(43)이 발견해 신고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각 신문마다에 실렸다.

이 동일한 사건의 원제목도 두 신문은 동일했다. “팔당호서 30대女 숨진 채 발견..경찰 수사”다. 그런데 인터넷 메인페이지에는 조선일보는 <나체女 시신담긴 자루 팔당호서 건져>였고, 중앙일보는 <팔당호서 이상한 자루 ‘둥둥’…여성 시신 발견>이었다. 주검을 앞에 두고도 이들 언론은 히트수 올리는데 이용한 것이다.

언급한 사례에서 보듯이 점잖게 폼 잡던 유력 일간지들도 튀는 카피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부정적으로만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있지만 유력일간지들조차 앞 다퉈 독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카피는 아무래도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독자들이 제로마인드 세대 즉, “생각하는 대로 즉시 행동이나 말로 옮기는 세대”이기 때문에 일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여러분도  멋진 카피로 글을 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이를 위하여 커피를 찐내나게 마시고 머리를 쥐어짜고 코피를 흘릴지라도 창의력 개발에는 이보다 더한 훈련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논문제목처럼 좀 쓰지 말고~^^

이형석(leebang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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