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은 없다

중간배제(disintermediation)효과란 게 있다. 중간(middle)단계를 없앰으로써 나타나는 기대치 상승효과를 말한다. 이제 중간자가 없어지고 있다. 대인관계에서나 생활 가운데서, 혹은 창업에서 중간자는 필요 없는 세상이 오고 있는 것이다.

전통업종(traditional Business)에서의 유통은 통상 4단계로 나뉜다. 생산자에서 도매상, 소매상으로 이어져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된다. 이러한 다단계 유통구조를 개선하고자 국가적으로 유통센터를 설립하기도 했고, 연구기관에 거금의 연구비를 지원하면서까지 해결방안을 찾기에 골몰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민간 유통업체에서 치고 나왔다. 가격파괴점인 아웃렛(outlet)이 그것이다. 이들 유통업체는 도매이자 소매상 노릇을 하고 있고, 일부 인기상품은 직접 생산해서 판매하기도 한다. 소비자가격 결정권도 예전과는 달리 유통업체가 쥐고 있다. K-mart나 월마트가 이러한 채널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중간이 없어진 것이다.

소비는 어떤가? 귀족지향의 소비심리가 경기와 상관없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고가품은 IMF기간에도 잘 팔린 반면에 중가(中價)상품은 잘 팔리지 않았다. 차라리 저소득 계층을 위한 초저가품이 그나마 많이 팔렸다. 역시 중간은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 고급품 중심매장이나 초저가 매장이라면 몰라도 가격이나 품질이 어중간한 상품으로 창업해서는 경쟁력을 잃게 되는 건 당연하다. 청소년 의류로 승부하려면 폴로, 노티카, 루츠, 후부, 빈폴 등 파워가 강한 브랜드로 승부하든지 아니면 차라리 상설 할인매장이나 재고(stock) 판매점 같은게 낫다는 얘기다.

음식점도 마찬가지다. 생고기, 바닷가재, 일식 등 객단가 15,000원 이상으로 하든지 아니면 차라리 1,500원짜리 과일도시락 배달업이나 2,000~3,000원의 유명 패스트푸드점으로 하는게 좋다. 이도저도 아닌 5,000~12,000원 수준의 어정쩡한 객단가 전략은 승부하기엔 벅차다.

일본 취재를 갈 때마다 느끼지만 대부분의 전문점들이 우리나라에 비해 스페이스가 좁다는 점이다. 고객들은 점포가 크다고 선호하는 것이 아니고 상품의 질과 전문성을 보고 찾기 때문이다. 반면에 맨하탄 소호거리에는 1백여평 되는 공간에 의류 몇 점 달랑 전시해 놓은 스토어들이 많다. 슬쩍 들어가서 물어보니 양복 한 벌에 최소 5천 달러라는 소리에 뒤도 안돌아 보고 돌아 나온적이 있다. 그곳에도 중간은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전자상거래, 아니 인터넷이 큰 몫을 했다. 다른 사이트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품질과 가격에서 경쟁우위를 지켜야만 하기 때문에 중간마진 줄이는 방법밖엔 뾰쪽한 도리가 없었다. 초기 전자상거래 사이트들은 소매상을 묶거나 유통업체들과의 제휴로 시작했지만 결국 제조업체와 직접 엮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다. 거래에서도 중간은 없다.

인력관리 측면에서도 중간자는 없어지고 있다. 사장과 말단사원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이제 임원을 거치지 않고 인트라넷이나 이메일을 통해서 직접 의견을 전달하도록 한 기업이 많다. 상명하달의 수직문화에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수평문화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요즘 대기업들은 대내적 요소인 승급에는 엄격하지만 승진에는 관대하다. 과장이니 부장이니 하는 중간의 장(長)의 역할이 줄어지니까 대외적으로 폼이라도 잡으라고 장자(長字)를 남발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은 ‘네트워크’라는 단어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네트워크 사회는 병렬, 즉 수평적 관계를 요구한다. 누구밑에서 일한다는 개념이 아닌 ‘같이 일한다’는 개념인 것이다. 성별과 나이, 직급과 상관없이 수평적 관계가 되어야만이 각자 주체가 되는 네트워크 사회의 시민(Netizen)으로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이형석(leebang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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