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이건 비밀인데요

화장실에 갔더니 소변기 위에 이렇게 씌어 있었다.
“오물에 튀어 더러워질 수 있으니 조금더 가까이 오세요”

이걸 보면서 순간 다른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지금까지 내 몸에 담고 다녔던 것이 오물이었다는 말이야?”

약간 비틀어서…

연예인 김OO가 왜 이혼했는지 아세요? “이건 비밀인데요. 이OO 때문이래요.”
“우리학교 남학생들이 모종의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여학생들에게는 비밀로 해 주세요.”

전자는 유언비어에 정통한 한 여성으로부터 받은 전화내용이고, 후자는 출강하고 있는 대학의 한 교수로부터 받은 전화 내용이다. 가만히 보면 그다지 비밀도 아닌 듯한데 굳이 비밀로 해 달라니까 더 발설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비밀(秘密)’의 사전적 의미는 “정보를 일정한 그룹의 사람들 사이에 공유하는 것을 말하며, 되도록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알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숨기어 공개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일정한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는 만큼 이미 그 정보는 비밀이 아니라는 말과 맥이 닿아있다.

비밀이란 비밀이라고 말하는 순간 전파속도는 두배로 커지는 속성을 지녔다. 특히 그 비밀이 짜릿한 내용일수록, 감춰줘야 할 부분이 많을수록, 지켜달라고 신신당부를 할수록 속도는 배가된다. 그래서 비밀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널리 퍼뜨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언제부턴가 나는 “비밀인데요.”라는 말을 하면 “그럼 말 하지마.”로 대꾸하는 버릇이 생겼다. 괜히 들어놓고 부담만 갖게 되니 차라리 안 듣는 것이 편해서다. 한때는 바로 이 비밀스런 정보로 잘난 체 한 적이 있다. ‘여의도 괴문서’라는 걸 받아보면서 남들이 모르는 갖가지 정보로 은근히 발설하면서 쾌감을 느끼기도 했고, 프랜차이즈 업체의 부도설이나 대표의 난잡함을 살짝 알려주며 생채기 내는데 재밌어 한 때도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비밀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크게 도움 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마음에 부담만 잔뜩 안게 되고, 오해의 근원이 될 수 있으며, 때론 부메랑이 되어 오히려 내가 괴로워지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숨기고 싶은 비밀은 아예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대학 때 읽었던 영시(英詩)의 한 구절 가운데 ‘다락방의 해골’이란 말이 있었다. 주석에는 “평생 숨겨두고 싶은 개인이나 집안의 비밀”로 나와 있었다. 다락방에 해골을 두고 이를 알리는 것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 것이어서 두고두고 씹힐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마저도 비밀로 지키기는 쉽지 않다. 영화 ‘인간의 약점(Human stain)’에서 대학교수인 ‘콜실크’가 자신의 치명적 약점을 숨기며 살아가는 모습을 본 사람은 비록 ‘다락방의 해골’이라도 남이 아닌 자신에 의해 결국 드러내게 된다는 모순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서…

내 안에 담고 있는 ‘얘기’들이 밖으로 나오는 순간 ‘오물’이 될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준 화장실에서의 경험이었다.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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