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 타이밍, 그리고 재미

otorhinolaryngology

몇 해 전, 잘 아는 한 이비인후과 의사는 어느 날 갑자기 봉직의에게 위탁하고 가족과 의논도 없이 병원을 떠났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골프장에 가고, 틈만 나면 해외여행을 갔다. 보다 못한 부인이 크게 화를 내면 바로 반박이 돌아온다. “제발 나를 가만히 두라.”는 거다. 그 부인은 남편의 그런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직 결혼 안한 두 자녀를 키우고 있고, 그렇다고 아직 많이 벌어 놓은 것도 없는데 일을 놓아버리니 황당하다는 거다.

 그 부인의 상담요청을 받고 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 줬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하면서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남편인데 일탈 욕구가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느냐?” “그것도 매일같이 냄새나는 남의 귓구멍이나 들여다보고 20여년을 살았다고 생각해 보라.”고도 했다. “가만히 놔두면 얼마 안 있어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고 안심시켰다. 가정에 심각한 위기를 맞을 뻔 했던 그 부부는 지금 다시 예전으로 돌아와 멋지게 살고 있다.

사람들은 의사들이 돈 많이 벌어서 골프나 치고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돈지랄’ 한다고들 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른 직업 이상으로 강한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이다. 같은 부위를 일년 열두 달 쳐다보고 찢고 꿰매고 하는 것도 모자라 가끔은 부작용으로 인해 고소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 부부는 ‘리듬’이 없게 사는 사람들의 흔한 사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우리 삶에서 리듬은 대단히 중요하다. 일종의 변화 있는 삶이다. 주어진 일상에서 변화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변화를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변화가 가끔은 이성적인 것에서 비켜가도 좋다. 도덕책을 숭배하다 보면 풀리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삶의 활력소는 ‘타이밍’이다. 필자의 오랜 친구가 있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취직한 대기업에서 지금도 여전히 근무하고 있는 장기근속자다. 언뜻 생각하면 이 나이까지 잘 근무하고 있으니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만날 때마다 보기 민망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30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그는 퇴직 압박에 시달려왔다. 디지털시대로 접어들면서 퇴직연령이 짧아진 탓도 있지만 간헐적으로 불어오는 구조조정 바람에 눈치를 봐야 하고, 머리 좋은 후배들에게 밀려서 어느 것 하나 앞서서 아이디어를 내지도 못한다. 그러니 회사 눈치 후배 눈치를 온몸으로 받아야 한다. 매년 기업의 구조조정 바람은 거세게 불어올 것이고 또 다시 비켜가려면 고난도의 눈치를 봐야 할 것이다. 그 스트레스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또 나를 만나면 ‘독립’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몇 번이고 말할 것이다. 10년 전에도 그랬다. 아니 만날 때마다 입에 붙어 있던 말이다. 그 때마다 경력을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추천해 주곤 했다. 그러나 “아내와 상의한 후 결정하겠다.”고 했던 그는 그 때마다 그냥 주저 앉아버렸다. 얘기했던가? “아내와 상의한 후”라는 말만 들어가면 이미 그른 거라고. 이제 그는 타이밍을 놓쳤다. 퇴직금을 받아 절약하며 40년 이상을 견뎌야 내야 할지도 모른다.

얼마 전, 한 잡지사의 특집기사 대상자로 필자가 선정되면서 사진기자가 방문했다. 특집기사에 들어갈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우리는 두 컷의 사진을 찍기 위해 상당시간을 함께 보내야 했기에 여러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잘 나온 사진 한 컷 보내 줄거지요?” 했더니 “제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보내놓고 가겠다.”고 했다. 얘긴즉 이 잡지사에 사진기자로 한 3년 일했는데 답답해서 이번에 그만두고 오지일주를 떠나겠다며 15개국의 여행일정을 소개한다. 답답한 이유를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재미가 없어서”라는 거다.

사진기자는 매일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게 일과이고 외부 일이 많은 직업이라 답답하고 재미없다는 의견에 그다지 동감하지 않았지만 그의 얘기를 들으니 그럴 것도 같았다. “취재기자가 찍어오라는 사람 사진만 찍어야 하고, 사진 편집도 제 의견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그냥 기계일 뿐이지요.”

“이번에도 출근하는 장면 사진은 거리를 행보하는 것 보다는 사진을 그래픽 처리하면 더 보기가 좋을 텐데, 굳이 실사를 그대로 쓰겠다네요.”라며 투덜거린다. 자신의 창의력을 쓸 기회가 없는 직장보다 차라리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견문을 더 넓히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거다.

이유야 어쨌든 가치 있는 삶의 조건 가운데 ‘재미’는 두 번째로 두기에도 아쉬운 키워드다. 현재의 굴레에서 벗어난 재미를 느낄 수 없다면 그 안에서라도 재미를 찾아보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다.

이형석(leebang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