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없이 떠난 여행

이번 봄에는 낙동강 걷기로 했다. 주제는 ‘무심’으로 정했다. 매번 강을 걸을 때는 주제를 하나 정해 놓고 걷곤 했는데 이번 주제는 그냥 ‘생각없음’이다. 3월 30일, 낙동강 시발점인 안동댐에서 상주보까지 약 85km를 일주일 간 걷는 것이 목표다. 밤 8시, 안동댐에 도착했다.

밤이라 위험해서인지 통행금지 팻말이 서 있다.  일주일을 걷기로 해서인지 은근히 긴장된다. 사실 강가를 걷는데 무슨 긴장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걷다보면  가끔 위기가 찾아온다.

안동댐의 밤

안동댐 근처에는 인가가 없다. 일단 왔으니 안동댐을 찍고 내려왔다. 내일 아침에 올라가 그 길을 다시 내려온다는 건 별로 내키지 않아서다. 한참을 내려오니 여관이 두개 나란히 있다. 그중 ‘야놀자’ 회원(?)여관은 이미 만실이어서  할머니가 주인인 옆 여관에서 첫날 밤을 보냈다.

야경이 제법 이쁘다. 건너편 사찰이 무척 의미있게 보이지만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강을 걸을 때는 구경하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나와 대화하기 위해 가장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이 바로 4대강 자전거 길이다.

 

여관에서 내려다본 안동댐 아래 낙동강의 야경

밤에 잠을 자지 않은 습관 때문에 새벽까지 음악을 들었다. 어떤 장르의 음악을 들어도 혼자 들으면 늘 슬프다. 그냥 우울하다. 그렇지만 그런 느낌이 그리 나쁘진 않다. 아니 오랫동안 훈련되서 오히려 안정된다.

커튼없는 시골 여관은 새벽의 단잠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냥 털고 있어나  주변 식당을 찾았다. 제삿밥과 간고등어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어제 먹으려고 했는데 간고등어 식당이 없어서 오늘은 꼭 먹고 가리라 생각했다. 근데 안동 간고등어는 유명한데 왜 간고등어 음식점은 없을까?

어렵게 발견한 간고등어 음식점, 문을열고 들어서자

“1인분은 안 팔아요”

아차차! 그렇지. 사실 앞서 얘기했던 ‘위기’라는게 이런거다. 혼자 밥먹기가 여간해서는 쉽지 않다는 점 바로 이거다. 옆 가게에서 단팥빵 두개를 사서 베낭에 넣고 본격적인 고행을 시작한다. (사실 비리비리한 내게는 고행이다. )

 

저만치 아침빛을 받은 안동댐의 모습

저만치 안동댐을 뒤로 하고 한참을 내려오니 친근한 기찻길이 보인다. 잠시 기찻길을 따라 가기로 했다. 3년 전, 동해남부선(송정역에서 울산까지) 걸을 때 기찻길 느낌이 좋았기 때문이다. 듬성듬성 난 개나리가 도로를 막아준 덕분에 한적한 기찻길에서 편하게 빵을 먹기로 했다. 근데 왠걸 크림빵이 눌려서 범벅이다. 단팥빵을 달라고 했건만…ㅠ

 

임청각(안동시 임청각길 63)

안동 임청각은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1858~1932)의 가옥으로 항일독립투쟁 과정에서 독립운동자금 마련 등을 위해 집을 내놓기도 하는 등 애환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자, 9명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역사적인 장소다. 사실 역사를 알고 찾아온 것은 아니고, 철길 따라 오다보니 자연스럽게 보게됐다.

언제부턴가 나는 여행지를 찾아다니는 소위 ‘관광’은 하지 않는다. 시간이 되면 아무때나 어디든 훌쩍 떠나는 게 편하고 좋다. 박물관이나 성당 안갔다고 무식하다고 하면       할수 없는 일. 아참, 그치만 오케스트라 연주는 한번씩 듣는다. ㅎㅎ 그냥 보이는 것 만 보고, 해석은 내 맘대로 하는 여행이 좋을 뿐이다. 이번에도 영산강과 낙동강 중에 출발 직전, 낙동강으로 결정했다. 준비없이 떠나면 위기도 있지만 때론 그 위기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더 스릴있어 좋다.

안동보

2~3시간 쯤 걷다보면 안동보를 만난다. 마치 연어떼가 물길을 거슬러 올라오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날씨 탓인지 동영상이 쓸쓸하게 느껴진다.

 

난동강 하구뚝 까지 377km 남았다. 그리고 내가 걸러 온 길은 8km 남짓이다.  얼마나 빨리 걸었는지, 얼마나 남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도시풍경에서 빨리 도망가고 싶다. 속도를 좀 내 볼까?

두번째 안동보

안동에는 안동댐과 2개의 안동보가 있는 것 같다. 정확하게 ‘보’인지는 알수 없으나 여하튼 2개 있다. 쏟아내리는 물줄기가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한참을 앉아 물소리를 듣는다.  문득 영화 August Rush가 생각난다. 자연과 일상의 모든 소리들, 그것이 sound든 noise든 작곡과 연결하는 소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기서 필을 받아 허밍으로 몇소절 녹음해 봤다. 집에와서 들려줘더니 “영감뽕짝”이란다.ㅠ

3월 말일 날씨치고는 상당히 춥다. 게다가 바람이 꽤 세차게 분다. 느티나무(맞나?)가 한쪽으로 크게 휘어질 정도로 센 바람이다. 방향으로 보면 남서풍 같은데 그 덕분에 미세먼지는 없어서 좋다. 마음놓고 입으로 숨쉬며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한 날이다.

 

안동시를 뒤로 하고 우회길이다. 자전거길 종점이라는 팻말 주변에 유난히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많다. 아마 이쯤해서 자전거 여행자들은 쉬어가는 자리가 아닐까 싶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행동이 그 사람의 ‘참모습’이리라.

 

안동시 남후면 개곡리

오늘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 남후면에는 잘 곳이 없다. 시골길, 특히 강길을 걷다보면 바로 잘곳을 못찾을 때가 종종있다. 다행히 조금 전 논 일을 하고 돌아오는 할아버지에게 미리 정보를 들었다.  만일 이 정보를 늦게 알았다면 오늘밤은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다.

버스 정류장을 겨우 찾았다. 앱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언제 올지 알수도 없는 일이다. 보통 시골에 가면 버스가 하루에 두번 정도만 운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곳에서는 2시간마다 있단다. 1시간쯤 기다렸다가 안동으로 다시 들어갔다.

지방엘 가면 숙박업소를 빨리 정하는 것이 좋다. 특히 안동과 같은 ‘남북도 지역’은 더욱 그렇다. 안동은 7시면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다. 자칫 어두운 밤거리를 배회하다가 불량한 사람으로 오해만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소도시를 가면 늘 목욕탕이 있는 여관을 찾는다. 가장 깔끔하고 따뜻하다.

 

이틑날이다. 다시 개곡리로 돌아와 여정을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순수한 강길로 이어진다. 말발꿉 모양의 물줄기가 운치를 더해준다. 사진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왼쪽에는 조선시대때 지어졌다는 정자가 오롯이 남아있다.

딱따구리

유교문화길(자전거길과 겹침)을 걷다가 바람소리 속에  나무찧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린다. 딱따구리다. 윗그림을 잘 보면 가운데쯤에서 딱따구리를 확인할 수 있다.^^

 

 

 

풍산읍에 도착했다. 낙동강에서 2km정도 떨어졌지만 오늘은 더 갈수 없다. 더 가면 잘곳이 없기 때문이다. 논두렁을 따라 풍산읍에 들어서자 풍산개 두마리가 따라오며 짓는다. 은근히 무섭다.

풍산개한테 한마디 했다.

“야! 무조건 짖으면 풍산개가 아니지”
“늬가 하도 도둑복장을 하고 나타나서 짖은거다!”

다행이다 도둑놈 같이는 안생겼나보다.ㅋㅋ

1인분을 시킬 수 있는 중국집으로 갔다. 주인장에게 커피한잔을 부탁하면서 얘기를 붙여봤다.

“풍산이 24개동이나 될 정도로 큰 동네이며 “안동사람들이 과거보러 가려면 여기를꼭 거쳐야 하는 요지”라는…
일제시대때 홍수가 자주 났는데 호가 운보인 풍산면장이 일본인 안동시장한테 찾아가 설득해서 (어쩌구 저쩌구)…

암튼 맥심커피 한잔 얻어마시려다 풍산 역사교육을 확실히 받았다.
다음번에는 ‘문경새재 과거길’을 한번 걸어봐야겠다.

3일째 다시 출발. 아직도 안동을 못 벗어났다. 안동이 생각밖으로 크다. 그나저나 유교문화길에 유교문화는 없고 쉼터도 잠겨있다. 평일 낮인데도.

 

예천으로 넘어왔다. 폐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혹시나 싶어서 자세히 봤더니 벌써 안동과학대학교로 주인이 바뀌어 있다. 에잇!
폐교 뒷마당까지 쭉 구경하고 동네를 둘러보니 참 맘에 드는 아담한 동네다. 이정도 입지와 환경이라면 뭔가 일을 벌려도 될것 같다.

다음에 다시와서 동네사람들과 한번 의논해 봐야겠다.

 

쉼터는 있으나 사유지다. 그래도 들어가 봤는데 역시나 사람이 없다. 시골에서 사람 만나기가 정말 어렵다.

점심은 늘 과자로 때운다. 김밥이나 빵은 금방 쉰다. 아쉽지만 그나마 과자가 제일 낫다.

자연은 사진기만 들이대면 그 하나 하나가 작품이 된다. 스토리가 사진속으로 들어오는듯 하다.

 

4일째 예천에서 의성으로 넘어가는 다리에 도착했다. 의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령화지수가 높은 곳이어서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 누가 의성 아니랄까봐 다리를 건너자 마자 폐가 하나가 을씨년스럽게 덮여있다.

 

 

 

4월 3일(수요일) 오후 4시 30분인데도 거리에서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파출소로 가서 숙소 하나를 추천받아 일찌감치 여장을 풀었다.근데 문제는 안동,예천 지역 여관들은 대부분 룸에서 흡연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냄새가 베어 있어서 상당한 인내를 요구한다.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친절한 주인아줌마 덕분에 메뉴에는 없는 된장국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밥도 두그릇이나 준다. 된장이 오리지널이라 그런지 정말 맛있다. 사진을 찍어 google map에 올려줬다. 원래 이집은 식육식당이다. 정육점과 식당을 함께하는…

“할배요! 산 밑에 불 놓지 마셔유. 산불나면 큰일나유!”
그 밑을 보니 ‘여성의용소방대’ 명의다. 재밌다.

문제는 저렇게들 홍보와 계몽을 했는데도 동해안에 산불을 막지는 못했다.

 

 

근 75km를 걷는 동안 그늘막, 이게 유일하다. 반가움에 바람은 좀 쎄게 불었지만 한참을 쉬었다. 참고로 ”’금강”은 군데군데 그늘막이 많이 놓여있다. 여름에는 이 그늘막 천정에서 말벌이 살긴 하지만…^^

5일째, 드디어 상주다. 이제 1차 목표지점 상주보가 불과 2.5km남았다. 숙소 때문에 들락거린걸 감안하면 약 90km정도를 5일동안 걸은 셈이다. 자전거박물관과 경천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람은 별로 없다. 경천섬에 연인인듯한 두 커플정도?

도남서원

정몽주, 이황 등 아홉선생을 모신다는 도남서원은 잠겨있다. 목요일 오후 4시인데? 문화가 있으면 지방소멸을 막을수 있다고?

이번여행의 마지막 종착지 ‘상주보’가 저만치 보인다. 그 주변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고 보니, 90km를 걷는 동안 커피한잔, 물 한병 마실 곳이 없었다.

4월 4일(목요일), 오후 5시에 이번 여행은 종료했다. 상주보에서 읍내 들어가는 버스->터미널->서울…

사실 쓰고 싶은게 많은데 바이러스가 붙었는지 자판기가 제대로 작동이 안된다. 조만간 공식 메거진을 통해 정리해볼 생각이다.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