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느낌, 그리고 나의 길

  • 초등학교 때 나는 공부를 꽤 잘했다. 그래봐야 시골인데 그게 그거겠지만…그런데 이 가운데 유독 점수가 ‘미’로 나온 과목이 있었다. 바로 미술이다. 아무리 잘 그려보려고 해도 되지 않았다. 미술 때문에 전체적으로 성적이 낮아졌지만 흥미도 잃어서 그만 포기했다. 미술은 내가 가야할  방향이 아니었다.
  • 중학교 때, 키가 크다며 선배들이 농구를 해보라고 권했다. 처음에는 꽤 잘했다. 그런데 키가 아주 작은 ‘김재웅’이라는 친구가 나보다 잘했다. 키도 작은 놈이 요리조리 피해 다니면서 정확한 슛을 날렸다.

운동회 때, 달리기에서도 늘 꼴찌 아니면 끝에서 두 번째로 들어왔다. 선생님이 나를 위해서 제일 마지막에 3~4명이 뛰도록 기회를 줬다. 그때도 죽어라고 뛰어야 겨우 3등을 해서 노트 한권을 탔다. 나는 체육으로 성공하기는 글렀다고 생각해 애즈녁에 포기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잘 한 일이다. 나보다 농구를 잘했던 재웅이도 운동으로 성공을 못하고 지금은 목사님으로 계시니 말이다.

  • 중학교 때, 선생님의 강권으로 웅변대회 나갔다가 상을 탔다. 웅변은 리더십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웅변 잘한다고 뽀족하게 할 일도 없었다. 그냥 발표 잘하는 특기 중 하나로 남기기로 했다.
  • 중학교를 졸업하고 뭘 할까 고민하다가, 가수가 돼 보기로 했다. 초.중학교 때 소풍가면 반대표로 노래를 부르기도 해서 잘하는 줄 알았다. 부산 KBS에서 전국노래자랑 예선에 나갔다. 작곡가 선생님이 나는 음색이 ‘C-’라고 알려주면서 두 세번 불러보라고 했다. 보기 좋게 예선에서 탈락했다. 그래서 가수가 되려는 기대도 접었다.
  • 중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무선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부산 초량에 있는 학원에서 죽어라고 공부했다. 초량에서 연산동까지 걸으며 네온사인을 보고 모르스부호를 익혔다. 덕분에 불과 하룻밤 만에  암기했고, 3개월만에 3급(을) 자격증을 땄다. ‘2급을’인지 ‘3급을’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암튼 중학교를 졸업하면 4~5번의 시험과 경력을 거쳐야 무선사가 된다. 해양대학을나오면 바로 1급을 딸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내 체력으로는 외항선을 타기도 어렵거니와 3급은 월급도 적다는 선배의 의견을 듣고 포기해야했다.
  • 중학교 때, 글짓기 대회에 나가 ‘수필’로 장원을 했다. 특별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머니에 대해 쓴 글인 것 같다. 내 생각에는 글 솜씨보다는 어머니라는 주제를 잘 잡았고, 다소 감성적인 글이 효과를 본 것 같다. 그 때부터 딱딱한 글도 몽글몽글하게 써왔고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묻는다. 정향을 찾으라고 하면 “뭘 잘하는지 알지 못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일단 해 보면 안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은 안되는거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뭔가 두고 온 것처럼 찜찜하다. 나중에 실패하면 “그때 그걸 했어야 했는데…”라고…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일단 도전해 보고 안 되면 빨리 포기해야 한다. 사람들은 포기하지 말라고들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포기는 많을수록 좋다고… 그만큼 해봐야 할 일이 좁혀지기 때문이다.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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