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1980년 초. 서울 동부지역 대학생들은 종로, 남부지역은 서울역, 서부지역은 신촌으로부터 “전두환은 물러가라! 좋다 좋다“가 시작됐다. 경찰들이 무자비하게 뿌려대던 최루탄 때문에 눈이 따가워 뜰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사람에 밀려들어간 곳이 YMCA연합회 건물. 안이 막혀있어서 다시 밀고 나오려했지만 불가능했다. 나처럼 다른 친구들도 뒤에서 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뒤로! 뒤로!”를 외치며 어렵게 빠져나와 무작정 뛰었다. 얼마쯤 뛰었을까? 문이 열린 식당에 무작정 들어가 물로 눈을 씻고 보니 낙원상가 남쪽 코너에 있는 추어탕집이었다.

이 10.26 사건 발표 장면은 전두환이 실권자로 올라선 상징적인 사진이다.

 

주인아주머니는 배 고플거라며 밀려들어온 청년들에게 추어탕 한 그릇씩을 공짜로 주었다. 추어탕을 얻어먹고 다시 종각으로 나오니 그때까지도 저항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한 장면이 있다.

한 학생이 YMCA 건물 앞 도로 중앙선에서 광화문을 향해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모습이다. 최루가스를 서쪽에서 동쪽방향으로 한차례 뿌리고 지나갔지만 그 학생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이윽고 다시 돌아온 최루가스차가 이번에는 양쪽에서 그를 정조준해 뿌려댔다. 1~2분을 견디던 그 학생은 그 자리에서 푹 쓰러졌다.

지금도 나는 종각을 지날 때면 그 장면이 어제 일처럼 생각난다. 그런데 그는 누구였을까? 비슷한 또래이면서도 존경스럽고 지금도 여전히 궁금하고 만나고 싶다. 그는 정말 누구일까? 아니 그보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 정치판에 있는 ‘그 때 업적’으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그 학생이 있을까? 틀림없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다.

나는 그때 바로 그 종각에 있었다. 단지 ‘조직이 없는 무명씨’로 참가했을 뿐이지만 분명 그 때에 종각에 있었다. 들춰내서 알아봐 달라는 건 눈꼽 만큼도 절대 아니다. 그럴만한 ‘운동’을 한 것도 더더욱 아니다. 다만 “거기 있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때처럼 지금도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산다는 것을 “조직 속의 유명씨”들이 잊은 듯 해서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오늘 교회에서 이 찬송을 불렀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https://www.youtube.com/watch?v=TS6Nay_IgEA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나는 엄숙하고 경건해진다. 종교적 경건은 결코 아니다.
일상에서도 이 문장이 주는 메시지가 너무나 강렬해서다

인생의 주요 고비 때마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는 정말 중요하다. 누가 함께 해 주었는가.  나는 그가 힘들어할 때 함께 했었는가.

성공했다고 현모양처를 버리는 사람을 가끔 본다. 그런 사람은 나중에 대부분 후회한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나이가 더 들어 함께했던 과거의 고통이 추억이 됐을 때, 그 때 함께 있었던 아내가 없다면 ‘아린 행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두 딸^^

나는 세상이 혼란할 때, 회사가 어려웠을 때, 아내가 외로울 때, 그리고 자녀들이 힘들어할 때, “ 거기 나 있었는가 그 때에…”
우리 딸들에게 미안한 밤이다.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