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에 대한 아린 추억

신주쿠맛집 '우동신'

숨 가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영혼의 허기를 달래주는 한국인의 소울 푸드(Soul food), 라면.
세대를 불문하고 라면과의 인연에는 스토리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최초로 라면을 먹어본 때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이틀을 굶었다가 하도 배가 고파서 읍내 식당에서 라면 3개를 시켜먹고 기절한 적이 있다.

이후 창업컨설팅을 시작한지 4년여가 지난 92년 경, 극도로 어려워진 회사 사정으로 라면만 먹고 일주일을 보낸 적이 있는데, 3일째 먹고 나서 얼굴이 퉁퉁 부었던 기억도 지금은 아린 추억으로 남아있다.

라면은 일본에서 태어났다. 1958년 8월 25일에 닛산식품 창업자인 ‘안도 모모후쿠(安蘇百福)에 의해서다. 당시에는 생소한 ’순간 기름 가열 건조 방법‘으로 치킨라면이 만들어졌다. 찐 국수에 양념을 더하여 가열된 기름에 가라앉혀 튀긴다. 그러면 수분이 증발하고 국수는 섬세한 기포가 생긴다. 여기에 물을 부으면 기포에 수분이 들어가 삶은 국수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원조국인 일본의 일인당 연간 소비량은 41.9식에 이른다. 이는 1인당 한 달에 3~4번 라면을 먹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들어가는 밀의 총 사용량은 33.2 만 톤. 이것은 면류 전체에서 약 27%를 차지한다.

최근에는 컵라면이 급성장해서 전체의 66.1%에 이른다. 컵라면도 1971년에 닛신 식품이 출시했다. 컵라면이 인기를 끈 이유는 조리 시간이 짧고 어디서나 먹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단순함이 현대인들의 속도감과 생활 패턴에 맞아 떨어진 것이다. 여기에다 동일본 대지진 때 ‘저장 음식’으로 수요가 증가한 것도 한 이유다.

라면의 성공으로 새롭게 등장한 트렌드가 패키지푸드(Packaged Food)다. 일과 생각에 지친 사람들에게 가볍게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메가트렌드였던 셈이다.

도쿄 스카이트리의 한 메밀국수집

우리나라의 라면역사는 1963년에 9월, 삼양식품이 바로 그 ‘치킨라면’을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그 후 롯데공업에서 라면을 생산하면서 대중화됐다. 출시 당시 삼양라면은 10원이라는 소박한 가격이었는데 당시 자장면이 30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리 싼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판매 초기에는 다소 저조했다. 그러다 1960년대부터 쌀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분식 장려정책’ 덕분에 라면 판매량이 늘기 시작했다. 라면이 인기를 끌자 전두환 정권 때는 삼미 프로야구단을 인수한 청보가 청보라면을 출시했다. 시장을 모르는 군 출신 인사들이 정권을 등에 업고 군납까지 독점했지만 맛이 경쟁력을 갖지 못해 결국 망했다.

라면이 도입된지 59년째, 그리고 라면의 선구자 안도 출생 104년째인 2019년, 출생  한 해 동안 세계에서 판매된 라면의 개수가 약 1001억개이며, 한국은 37억 4천만개로 세계 8위 소비국이다. 아직도 여전히 라면은 우리의 소울푸드로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라면이 48개국에서 생산. 판매되고 있는 라면의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 일부국가는 아직도 일본에서 수입하는 나라도 있지만 저마다 현지화된 제품들이다. 이렇게 현지화가 가능한 배경에는 최초 개발자인 안도의 배려 덕분이다. 그는 아이디어를 독점하지 않았다. 상품이란 경쟁할수록 좋아진다는 지론으로 많은 경쟁기업들이 특허를 사용할 수 있도록 공정 사용을 승낙해 준 것이다. 창업가들이 한번쯤 되새김할만한 이슈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라면이 잘 팔린다고 한다. 저출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일본에서는 소득감소로 인해 향후 시장은 소폭 증가세가 지속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인스턴트 라면이 잘 팔리면 불황의 징조라고 하는데 라면 매출이 떨어진다는 통계를 듣게되는 말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방인